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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옆나라 북한(7) 북한의 여름철 파리잡이

오피니언 | 작성일: 2025-07-18 14:40:43 | 수정일: 2025-07-18 14:40:43

 

먼나라옆나라 북한(7) 북한의 여름철 파리잡이

 

이은혜(가명, 북향자)

 



▲2021년 황해도 지역 농촌지원 © 노동신문=뉴스1
 

 

예전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북한의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노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남한처럼 사교육이 당연시되지 않았으니 학원에 갈 일도 없고, 학생들은 대부분은 학교를 관리하거나 사회적 노동에 동원된다. 소학생(초등학생) 때부터 교실과 학교 운동장 청소를 하다 보니 모두 청소에는 달인이 된다. 봄이 되면 주변 야산이나 고속도로 주변에 나무나 코스모스를 심기도 했다. 고급중학교(고등학교) 1학년생이 되면서부터는 한 달 넘게 ‘농촌지원’을 나가 농장에서 숙식하면서 농사일을 했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돼 조금 공부하다 4월 말부터 5월 말 혹은 6월 초까지 동원되는 농촌지원은 모두가 싫어했다. 농사일이 힘들었고, 특히 여학생들은 피부가 까맣게 타는 게 싫었으며, 다리에 둘러붙어 피를 빨아먹던 거머리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 끼칠 정도로 싫은 추억이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들이라 지칠 줄 몰랐고, 그 속에서도 즐거움과 추억을 만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편을 갈라 ‘말타기’를 즐겼고, 말이 무너지면서 넘어진 어느 아이 얼굴에 묻은 소똥은 모두가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매일 눈을 뜨면 해뜨기 전부터 차가운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해야 하는 것이 끔찍했지만, 어느 학급에나 있는 익살꾼 오락부장이 뽑아내던 노랫가락은 지금도 애틋한 기억이다.


그렇게 농촌지원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면 여름이 시작된다. 여름이면 매일 파리를 30마리씩 잡아 바쳤다. 수업이 끝나거나 휴식시간이 되면 다들 파리채 한 개씩 가지고 야외 변소(화장실)로 향했다. 거기에 파리가 제일 많았기 때문이다. 쉬파리로 불리는 큰놈들은 잡으면 반으로 갈라 2마리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꼬장꼬장한 위생담당(모든 학급에 있는 학생위원회 임원으로 옷차림, 정리 정돈 등 위생 상태를 매일 체크했다)은 매일 어김없이 잡은 파리가 몇 마리인지 세어 받았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가정집에서는 파리채를 잘 쓰지 않았다. 벽지에 앉아 있는 파리를 잡으면 그 흔적이 남아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방충망으로 잘 차단하지만, 간혹 용케 들어온 파리들은 출입문을 열어놓고 수건 두 개를 양손에 감아쥔 다음 휘휘 저어 밖으로 쫓아 보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북한은 파리를 잡았어? 우리는 쥐를 잡았다는데….”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쥐꼬리를 준 사람도 있었대.” “북한도 파리 잡아주며 고백한 거 아니야?”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고는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야!” 라는 뻔한 감탄사로 마무리했다. 


1970년대 남한의 쥐잡기운동과 1990년대 북한의 파리잡이는 몹시도 닮아있다. 물론 지금은 하지 않는다. 하나의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남북인지라 70여 년의 기나긴 단절에도 여전히 우리는 다름보다는 같음이 훨씬 많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에서 우리 세대가 겪었던 일들을 남한에서는 부모님 세대가 겪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남북한의 차이는 체제와 이념의 차이보다는 시대적 차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차이가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회보 하늘지기에 연재되었던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민족화해위원회와 저자 이은혜(가명, 시민 작가)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원문 : 하늘지기 |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peac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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