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이야기 (6)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세계를 가꾸는 여행’
알콩달콩 이야기 (6)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세계를 가꾸는 여행’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진화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세계를 가꾸는 여행’
이 멋진 문구에 매료되어 우프코리아에 가입한지 3년이 되어간다. 우프는(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기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하루 반나절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전 세계 130여 국가에서 활동하는 국제단체이다. 신뢰와 지속가능한 글로벌 커뮤니티 구축을 목표로 ‘비화폐 교환’에 따른 문화와 교육 경험을 촉진하며 유기농 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활동이다.
한국 우프농가는 60곳, 세계 우프농가는 12,000곳에 이른다. 나는 호스트가 되어고 우퍼는 우리집에 머물며 하루에 4~6시간 밭일을 같이 한다. 농사일을 하는 시간 말고는 같이 요리해 먹고 어울리며 대화하거나 각자 자유시간을 갖는다.
낯선 사람과 며칠씩 같이 보낸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우퍼는 손님이지만 대접하기만 하지않고, 함께 일하지면서도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을 배려해야한다.
나의 첫 우퍼는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한국인 모녀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발효식품 사업을 해봤던 20대 여성 린다는 잠시 쉬어가며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다. 린다어머니는 친정 어머니를 간병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모녀는 낮에는 밭일을 하고, 저녁에는 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어머니였지만 누룩으로 빚은 전통 방식의 쌀막걸리를 앞에 두고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온 여성으로서 겪고 느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눴다.
작년 가을에 온 우퍼는 일본 청년이었는데, 첫 우핑이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젊은이였다. 마침 ‘공릉천친구들’이 주최하는 걷기대회가 열려 같이 참여하고 뒤풀이까지 가서 늦도록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고, 평화마을짓자의 가을잔치 때는 생태화장실에 오일스텐을 바르고 꽃초밥을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파파고로 대화를 나눴다. 이 청년은 전 세계 10여개국을 돌아다닌 끝에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아주 인기가 있다는 한국 노래를 틀어주며 누가 부르는 노래인지도 모르는 나를 신기해했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에 오는 우퍼들은 20대 젊은이들이 많았다. 올 봄에 찾아온 두 젊은 한국여성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영어가 유창했다. 미국에서 우프를 소개받고 오게 되었다며, 성실하게 풀을 뽑고 같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며 저녁에는 인터넷강의를 듣곤 했다. 민통선에 들어가 배 과수원에서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배꽃을 땄는데 화창한 날씨에 음악을 들으며 아주 즐겁게 작업을 했다. 하얀 배꽃 사이로 두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덩달아 흐뭇해졌다. 과수원 주인이 고맙다며 통일촌에서 점심을 사주고 덕진산성에 같이 오르니 초평도가 내려다보이고 임진강가 논에 물이 찰랑거렸다. 허준 묘를 들렀다가 민통선을 나와서 임진각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우리의 밥상 주제는 진로, 사랑, 인간관계, 한국 사회, 삶에 대한 것으로 매우 풍부하고 자유로웠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서로 경청하며 경험을 들려줄 수 있다니 나로서는 기대 이상의 행운이었다. 관계에는 지속성과 새로움이 모두 필요하다. 가족과 친구들은 오래 지속해온 관계이지만 새로움으로 채우기가 쉽지 않다. 며칠 간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을 찾아온 인연들과 나눈 깊은 대화가 삶에 활력을 준다. 농사일도 여러 날 함께 하는 것이기에 농민들이 호스트가 되어 일손도 얻고, 새로운 네트워크와 만남의 기회를 얻으면 참 좋겠다. 세계를 가꾸는 여행자를 기다리는 설렘도 함께....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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