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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95)  독서마라톤대회서 풀코스 완주 이경희 미화원

입력 : 2020-05-29 03:06:28
수정 : 0000-00-00 00:00:00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95) 

독서마라톤대회서 풀코스 완주 이경희 미화원

 

  책 읽기를 사랑하며 소박한 삶을 산다.

 

 

 

한 인생을 몇 시간만에 논하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시간안에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도 부정확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기준으로 어떤 스펙트럼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이 세 가지를 진정으로 깊게 사유케 하는 인물이 여기 있다. 법원리에서 32년째 살고 있는 이경희(62) 미화원이다. 자그마한 키에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작은 여인. 그런데 그녀를 알고나면 참 아름답다. 얼굴이 이뻐서가 아니고 대화 속에 떠오르는 그녀의 영혼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녀는 책을 좋아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잦은 이사

친구를 만들기 어려워 시작한 독서, 절친이 되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참 이사를 많이 다녔다. 경기도 양평, 평택, 서종리, 금촌 등 여러군데에서 짧게 짧게 살았고 그래서 학교친구들도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고 조용한 외톨이가 될 수 있었다. ‘되고 말았다가 아니고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외톨이의 외로움이 그녀에겐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책이다. 친구들과의 교류가 여의치 않았던 그녀의 외로움을 아버지는 걱정하고 이해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진 그녀에게 계몽사에서 발간한 문학전집 50권을 사 주었다. 책 속에 빠져들었다. 사실 이때부터 책만이 그녀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금촌으로 이사하면서 정착하셨다. 대위로 전역했고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정주가 시작됐다. 파주여중과 파주여고를 나왔다. 학창시절 내내 책만 읽었다. 활자중독자 같이 글만 보면 가슴이 뛰었다. 친구 몇 몇을 만들 순 있었지만 역시 책 만한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남편 따라 법원리로 이사, 32년째 신앙생활

남편이 하나님 만나게 했죠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의 기계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다 남편을 만났고 1988년 결혼했다. 남편을 따라 당시 깡촌에 불과했던 산 좋고 물 좋은 법원리에 터를 잡았다. 남편이름은 정낙철(64). 그녀보다 2살 많다. 조용하고 그녀만큼 존재감은 착함으로 투명하다. 지금은 건축일을 하지만 당시 남편은 공장서 직공으로 일을 했고 생활은 어려웠다.“하나님을 만난 게 남편 만나고 나서니까 남편이 하나님을 만나게 했다며 일순 파안대소를 한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아들 하나를 낳았다. 정한울(32). 커피 만드는 일을 한다.

지난 3월 손녀봤으니 됐다.

지난 35일에는 손녀 정유주를 보았다. 인생의 의무를 조용히 완성한 것이다. 그녀는 현재 문산 선유리 산업단지에 있는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청소 일을 한다. 일요일엔 법원중앙교회(담임: 박충남 목사) 유 초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권사다. 이 교회를 다닌 지는 벌써 20. 이정도가 내가 파악한 그녀에 관한 정보다. 법원도서관 지하 아늑한 의자에 앉아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미터를 준수하며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삼매경의 기쁨으로 현실의 고통을 이긴다

그녀의 외부적 시간은 이렇게 평범하게 흘러갔어도 그녀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역시 책이었다. “책을 보면 충만해 지는 느낌” “정보습득에 도움그리고 혼자 놀기 좋아서가 그녀가 책을 읽는 이유다. 보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책이 그리 흔하지 않을 때라 좋은 책을 만나면 그게 바로 행복이었다. 당시 법원리에는 도서관이 없어 문산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다 보았다.

남편과의 갈등이 있을 때마다, 다른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펼쳤다는 그녀는 독서삼매경의 기쁨으로 고통을 이긴다 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책을 펼쳐 보는 척 하라 했을 때 이내 그녀는 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본질이다.

 

 

박학다식한 이경희씨 클래식 음악에도 일 가견.

다양한 분야 수천권 읽고, 많이 들었다.

그녀는 박학다식하다. 클래식 음악에 심취해 있는 그녀는 팍 터져나가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교향곡을 좋아한다. 베를린 필, 카라얀의 지휘 스타일을 논하며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다. 일터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는 작은 여인. 그러나 결코 만만치 않는 지식의 내공을 지녔다. 그녀가 읽는 책은 잡식성! 경제, 경영, 문학, 역사, 종교. 에세이 등 종류가 다양하다. 백과사전을 쪼개 읽을 기세다. 그간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이지성이 지은 생각하는 인문학”.

5천년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이 담긴 책이다. 사색공부법이 기억에 남는다니! 여태껏 수천 권을 읽고 살아온 그녀의 독서이력이 선택한 책이다. 그녀가 책을 읽는 방법은 전략적이다. “출 퇴근 때는 가벼운 에세이가 좋고 집에 와서는 무게감이 있는 책을 읽는다고 말한 그녀는 최근 구약과 신약을 다시 한 번 보았다며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이제 여행도 자주하면서 세상을 읽고 싶다

그녀는 작년부터 생활패턴을 조금 바꾸었다. 또래 친구와 매월 5만원씩을 모아 금년 1월에 여행사를 따라 난생 처음 23일로 제주도를 갔다 왔다.

처음 본 제주도가 기쁘긴 했지만 프로그램 따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말한 그녀는 다음부턴 여행사를 따라가지 말고 둘만 가기로 했다며 아쉽고 허무했던 제주여행을 추억했다.

수목원이나 법원읍에 있는 자운서원 같은 곳을 즐겨 찾는다는 그녀는 비온 다음 신록을 보고 창조의 신비를 느꼈다며 간결하고 담백한 신앙 고백을 들려준다.

2019년 독서마라톤대회서 풀코스 완주

8개월 동안 151권의 책을 보다

조용히 흘러가는 그녀의 인생에서 특이하게 솟구친 적이 한번 있었으니, 그녀가 작년에 열린 제13회 독서마라톤대회에서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 상을 받은 일이다.

파주시 중앙도서관이 주최,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에 걸쳐 진행된 독서마라톤대회에서 그녀는 총 151권을 읽었다. 1페이지당 1미터의 거리로 환산되는 42,195페이지를 독파해 당당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것이다,

평소 틈만 나면 법원도서관을 찾는 그녀- 이경희씨를 법원도서관 사서 조영란씨가 눈여겨보고 있다가 참가를 권유했다. 151권이면 1달에 18.8, 1주일에 4.7, 하루도 빠지지 않고 0.67권을 보았다는 이야기다. 조용한 집념이 장난 아니다. 이젠 그녀의 스토리를 마무리 할 때다.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산다

인생에서 무엇이 배웠는가를 물었다. 겸손이 답이다. 교만을 경계한다고 했다. “섬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 그녀에게 삶은 선물이다.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다시 느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게 인생이니 지금 주어진 선물인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게 잘 사는 것 아니냐며 밝게 웃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가 사주는 막국수가 참 맛 있었다. 이경희씨를 내차로 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길 위로 뜬 하얀 뭉게구름이 포근하다. 그 모습이 그녀의 얼굴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통속적인 기준으론 별난 인생이 아니다. 하지만 내면을 통해 나오는 편안한 얼굴이 그녀의 순박한 삶만큼 아름다웠다. 거짓 없는 삶, 욕심 없는 삶, 조용한 내면의 충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온 아름다운 삶의 얼굴 말이다.

 

 김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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