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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㊶ 어린이서점 동화나라 대표 정병규 씨

입력 : 2016-08-18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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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에 숨은 보석 어린이 서점 ‘동화나라’

 

 

헤이리 마을 안에 온통 그림책과 어린이책으로 가득찬 공간이 있다. 4번 출구에서 복잡한 사거리를 지나 논밭예술학교를 지나 몇 개의 갤러리를 지나면 왼쪽으로 유리벽면에 배부른 늑대가 그려진 공간이 나온다. 눈썰미 좋은 아이들은 금새 안다. 배가 부른 늑대? 어...빨간 모자 늑대 아니야? 그렇다. 이 그림은 동화나라가 1996년 일산 대화동에 둥지를 틀고 어린이 전문 서점을 시작했을 때 들락날락하며 그림책에 빠져 지내던 아이가 훌쩍 커서 그려준 것이다. 이 늑대에게서 빨간 모자를 볼 수 있다면, 그대는 이미 동화나라의 주인공이다.

 

1990년대 창작 그림책의 도약기

70~80년대만 해도 어린이 책 시장이 크지 않았다. 더구나 단행본 시장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계몽사나 금성출판사 같은 굵직한 출판사에서 50권, 100권 짜리 전집으로만 어린이 책이 유통되었다. 그리고 그 전집은 외국작품이 다이제스트화 되어있거나, 일본에서 출판된 작품을 재번역하는 수준이었다. 어린이책 단행본 시장은 없었다. 이런 출판계 시장은 90년대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학교도서관 저널(2012년 4월호)’은 90년대를 창작 그림책의 도약기라 성격 짓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우리나라 그림책 1990년대 들어 경제적 부흥과 함께 이에 따르는 신흥 중산층 세력이 등장했다. 이것은 사회계층으로서 그림책의 구매자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그림책, ‘두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미술관’

이것은 1970~1980년대 저항을 거쳐 정치적 변혁을 이루었던 386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점과 맞물리는 때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에게 독서를 실천함으로써 그림책의 가장 중요한 독자층이자, 양질의 그림책 출판을 유도하는 비판적 독자층이 되었다.”

 

이 90년대에 정병규씨는 출판사에 얼마간 다니기도 했고, 책 디자인일도 했었다. 당시 언론노조 산하의 출판노조에서 내는 소식지에 만평을 싣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일은 엄두도 못냈고, 생각해보지도 못했어요. 인테리어 디자인도 얼마간 해봤는데 적성이 안맞았어요. 현장에서 거칠게 일하고, 사람들과 갈등도 많이 느끼고 해서, 한 선배가 출판사에서 디자인 일을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 그 때부터 책과 관련된 일을 시작했지요.”

 

▲헤이리 동화나라 1층 서점전경(파노라마 촬영).

 

어린이 전문 서점 운영 20년

그러다가 어린이 그림책 서점을 냈다. 이유는?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이 좋았습니다. 직장이나 조직 생활에 적성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1996년 일산 대화동에 ‘어린이서점 동화나라’ 문을 열고 운영하다가, 이곳 헤이리로 이전하여 2004년에 문을 열고 지금까지 한 길을 걷고 있다. 정병규씨(54세)과 그의 부인 김향선씨(48세)가 같이 운영한다.

 

당시에는 어린이문화 공간이 아주 적었다. 도서관도 많지 않았고,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몇 몇 백화점에서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대화동에 있던 ‘동화나라’는 어린이문화운동의 아지트 같은 역할을 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 일산 지부의 기수별 소모임과 장르별 모임들이 이 동화나라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래서 동화나라는 모임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도, 운영난이 계속되었다. 정병규 사장이 서점을 처음 냈을 때부터 지하공간에 작은 전시도 하고, 음악회도 하고, 아이들 작품 발표회도 하면서 책 파는 일보다, 어린이 문화 활동에 더 크게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었을까?

 

“일산에서는 사람들이 오기 쉬운 장소,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있었지요. 그래도 운영난은 계속 되었고...당시에 여기 헤이리 마을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땅을 싸게 분양한다고 해서 회원으로 가입했고, 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산에서처럼 임대료 때문에 허덕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로 오게 된 거지요. 그런데 여기는 사람이 없어요.” 그의 미소가 달지는 않았다.

 

▲동화나라에서 전시중인 수제작업 그림책.
 

두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미술관

지금 동화나라 지하공간에서는 전시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림책이 작은 미술관임을 실감나게 하는 전시이다. 상상을 자극하는 팝업북, 한 장으로 길게 펼쳐지는 그림책, 그림 모양 따라 커팅한 그림책, 일일이 수작업으로 프린팅해서 2,000부만 한정 제작된 그림책, 글 없는 그림책. 이 전시를 보면 그림책이 단지 문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거나, 스토리 전개에 끼어드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 자체로, 그리고 그림책 자체로 당당하게 독자를 마주한다. 그림책이 ‘두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미술관’임이 실감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어린 꿈이 그림책 서점으로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사람이어서 더더욱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미술을 하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했어요. 당시만 해도 그림을 하면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초등학교때부터 집안이 완벽하게 기울어버렸다. 다섯 남매중 막내였지만, 집안 형편을 눈치채고 스스로 포기했다. 당시 형님과 누나들도 막 취직했거나 학생이었기에, 스스로 알아서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정병규씨는 “그래서인지 자신은 그림을 배우지 못했지만, 남이 하고 있으면 부럽고 관심이 갔고, 그것이 지금의 어린이 서점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섬세한 작업이 돋보이는 컷팅북.

 

여기 들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

인터뷰중에 손님이 들어왔다. “책을 권하고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옷이나 그런 것은 권할 수 있으나, 책은 막 권해서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책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잘 모르거든요.”

“저는 그것이 안되더라구요.”

정병규씨의 품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출판단지에 롯데아울렛에 가는 인구가 주말이면 4만명. 그 인구가 출판단지에 있는 서점이나 책방으로 가는 인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쇼핑을 목적으로 가기 때문에. 여기 헤이리에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 여기 들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카페나 식당에 가서 안 먹고 나올 수는 없잖아요. 책방에서는 반드시 책을 사야한다는 강제조항이 없죠. 식당에 들러서 가만히 앉았다 구경하다 나가면 이상한 사람이 되지요. 그렇지만, 책방에서는 구경만 하다 나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설명을 듣고 보니 그렇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가듯이, 책방에서는 책 사고 나오는 풍토가 되어야 할 텐데...

 

▲정병규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2005 파주어린이책잔치 포스터.

 

출판도시 어린이 책잔치 12년간 행사 기획

책방하기 전에는 어린이 서점 개점에 대해 컨설팅도 했다. 2000년 이전, 어린이서점이 문화운동처럼 펼쳐지면서 어린이 전문 서점이 전국에 100여곳이 넘었다. 그러다가 20~30%할인으로 독자를 유인하는 온라인서점 때문에 동네 책방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어린이 서점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니, 정병규씨가 하던 어린이 서점 컨설팅 일도 없어졌다. 이후 동화나라 서점 운영에만 몰두하다가, 문화기획자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5년 출판단지 어린이 책잔치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12년째 행사를 기획해왔고, 올 10월에 세종시에서 열리는 책 행사와, 국립어린이 청소년 도서관 전시 ‘그림책을 펼치다’도 기획하고 있다.

 

문화기획자로서 정병규씨에게 기억나는 책잔치를 물었다. ‘2005년 어린이 책 잔치 칙칙폭폭’중 야외 행사로 기획된 프로그램을 들었다. “엄마가 어떻게 잉태하고, 아기를 낳고, 어떻게 키우는 지를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감동적이었어요. 아주 적은 돈으로... 지금도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기억합니다. 작가만이 아니라,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는가가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만날 일이 있다면 무릎 꿇고 고맙다고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걸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요.”

 

▲'동화나라'에서는 팝업북 등 그림책의 다양한 세계를 맛볼 수 있다.

 

헤이리에 숨은 보석 동화나라가 보석처럼 빛나길

동화나라는 헤이리에 묻혀서 더 빛을 못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헤이리에 오는 사람들은 카페에 오고, 건물이 특이하네 라고 감탄하다가 가는 것이지, 책을 보러 일부러 오지는 않지요. 그래서 전시도 하고, 겨울에는 문 앞에서 오뎅도 팔고 했는데...”

책방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희망이 안보였을 때, ‘내가 왜 이것을 계속 하고 있지’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일은 문을 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예요.” 그저 내일 문을 여는 크지 않은 소망으로 ‘동화나라’가 지속되길 그는 바라고 있었다.

 

그림책은 20년 정도 지나야 평가가 되어 살아남을 책들은 남고, 사랑받지 못하는 책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다. 어린이 서점 동화나라는 2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이제 우리가 헤이리에 숨은 동화나라를 진짜 빛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글 · 사진 임현주 기자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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