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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③ 서예하는 농부 - 조문현

입력 : 2014-11-12 2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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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3






조 문 현






서예하는 농부



올해 나이 팔순인 농사꾼 조문현(80세)님.



동네 사람들은 그를 농사꾼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죽정 (竹正)이다. 서예를 하면서 얻게 된 호다. 그 래서 그를 서예 하는 농부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파주는 신도시가 들어서 고 공업단지가 들어서서 많은 농경지가 없어 졌다. 하지만 아직도 농경지가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그만큼 농업인도 많을 수 밖에 없 다. 비단 농사를 짓는 사람이 그 한 명이겠는 가마는 그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파 주를 수 놓는 또 하나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찾 아 갔다.



월롱면 씁태리 함씁골길에 위치한 그의 집.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엔 깻단이 가지런히 세 워져 있고, 빨간 고추가 멍석에 널려 있다. 집 안에 들어서니 노부부가 한창, 말린 고추를 손질하느라 바쁘다. 열린 방 한켠엔 이미 손 질을 마친 고추포대로 꽉 차 있다.



“농사를 짓는 다는 건 흐믓한 일이지요. 땅 을 일구어 생명을 잇는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젊음을 다 보내고 난 뒤 예요.”



그냥 선택이고 말고도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 농사란다. 9살에 아버지를 여윈 그의 집은 그가 중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살림이 넉 넉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큰댁 을 도우며 시작한 농사가 그의 삶의 전부가 됐다.



“아침에 일찍 내려가지 않으면 큰아버지께 많이 혼났지요. 눈치도 보고... 아침 일찍 논 길을 따라 꼴을 베고 있을 때 저 만치 친구들 이 학교에 가는 모습이 보여요. 그러면 일하 다 말고 친구들을 피해 한참을 숨었다가 나오 곤 했지요.”



마른 손으로 마른 입을 쓸어모으는 그에게 서 힘겨웠던 아주 오래된 시간을 엿본다.



“큰댁 일을 돕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미군부대에 취직을 했어요. 그때 큰아버지가 농사짓기 싫어서 그런다고 싫은 소리도 많이 하셨지요. 그렇지만 참 잘한 결정이었지요. 부모님이 남기신 해타골 밭과 작으마한 논에 농사를 지으면서 직장생활을 했고, 그 곳에서 나온 월급을 모아 한평 두평 산 땅이 꽤 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새벽에 일어나 농사 일하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들어와서 또 농사 짓고... 참, 그렇게 살아왔지요.”





그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다고 한다. 예전에야 어쩔 수 없이 그랬다지 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일찍 움직일 필요가 없는데도 65년간 몸에 밴 습관이 그를 아직 도 이른 새벽에 몸을 일으키게 하고 있다고 한다.



‘농사 경력 65년, 그 안에 미군부대 11년, 올 곳이 농사만을 짓기로 하고 있다가 마을이 장 으로 7년, 6남매 가르치기 위해 건설회사 수위로 18년, 농사일이며 가사에 도움이 되 기 위해 신축건설공사장 수위로 8년’ 이것이 그가 70세 까지의 이력이다.



그리고 그는 고희연을 마치고 자유를 선언 했다. 이제 더 이상 직장일을 하지 않기로 하 고 남아 있는 농토를 가꾸며 나머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겠다고 했던 것이다.



“농사 외엔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랐어요. 아는 게 없었죠. 배우지 못해서... 이젠 자식 들 다 시집장가 보내고 농사일도 얼마 되지 않고 시간이 많이 남죠”



늘 공부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서예다.



“서예를 한 지는 8년 됐지요. 노인복지관에 서 처음으로 서예를 배웠어요. 지금은 운정 행복센터로 다니고 있어요. 거기엔 파주 각



서예전시회를 가졌다.



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지요. 그 분들과 친 구처럼 지내니 좋아요. 무엇보다 가방을 들고 무엇인가 배우러 다니는게 얼마나 재미있는 지 몰라요.”



마냥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그는 제법 큰 서 예대전에서 수상도 여러번 했다.



그리고 올 봄 팔순잔치를 맞아 집 마당과 뒷동산에서 서예전을 열었다.



그동안 큰아들이 틈틈이 찍은 부모님의 일 상 사진과 그가 쓴 서예작품이 뒷동산을 수 놓았다.



“서예하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동네 이웃, 친구들 모두 부러워 했지요. 죽정 덕에 요즘 볼 수 없는 진짜 잔치 국수를 먹게 됐다고. 또 이렇게 뜻깊은 잔치를 볼 수 있어서 덩달아 행복하다고요.“ 그날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 다.



사실, 삶이야 늘 순간순간 고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고 행복하다 고 한다. 자신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사회 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이 노년에 자식들과 떨어져 있어서 많은 외로움을 격고 있는 것을 보면, 삶이 그렇게 화려하진 않아도 부모를 지켜주는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낀단다. 그는 부인 이인성(77) 여사와 큰 아들 내외 그리고 손주 넷 이렇게 여덞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글 | 김순이 / 사진 | 이정상, 조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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