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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㉔ 모래무지

입력 : 2016-12-26 15:13:00
수정 : 0000-00-00 00:00:00

 

㉔ 모래무지


“모래 속으로 쏙!” 모래무지




물 속 모래밭에 사는 모래무지

나는 전라도 고창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산과 들판이 어우러진 곳이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냇가로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한여름 냇물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면서 물고기 잡느라 바빠서 등이 빨갛게 익는 줄 몰랐다.

 

우리는 물고기를 족대로 몰아서 잡고, 돌 틈이나 풀숲을 더듬고, 어항에 된장을 넣어서 잡았다. 어른들은 그물을 놓아서 잡고, 지금은 불법인 투망을 던지거나, 전기(밧데리)로 지지기도 했다. 나중에 부모님께 들은 얘기인데, 당신들은 어렸을 때 밤에 횃불을 들고 수면을 비춰서 잠든 물고기를 뜨기도 했다고 한다.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읍내강’은 상류에서 떠내려 온 모래가 아주 넓게 펼쳐졌다. 물 속 모래밭에는 모래무지가 무지 많이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래무지를 ‘오라막지’라고 했다.

 

그 시절 우리들에게 모래무지 잡기는 놀이였다. 물속에서 놀다가 몸을 딱 세우면 모래무지가 모래와 내 발이 맞닿은 사이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잽싸게 발 아래로 파고들다 놀라서 숨는 거다. 친구들에게 손으로 발을 가리키면서 “야 오라막지 여깃따!”라고 하면 친구들이 잠수해서 발아래로 들어가 발을 손으로 더듬어서 모래무지를 잡았다.

 

오라막지가 오른 발로 들어갔는데 왼쪽 발을 더듬으면 영문을 모르고 잠수했다가 나온 친구가 없다고 “니 그짓말했지?”하면 “야 이놈아 그 발이 아녀, 이발이여.”라고 하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친구는 다시 들어가 손으로 발을 더듬더듬 간질이며 모래무지를 잡아냈다. 멱 감는데서 친구가 멀리 있으면, 발을 가만히 치우고 모래무지 숨은 자리를 더듬어서 혼자 잡기도 했다. 물이 얕으면 허리를 굽혀 내 발밑을 더듬어 잡기도 했다. 모래무지는 잡았는데 물속에서 나오기 귀찮으면 물구덩이로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잡은 모래무지는 냇물 가장자리에 모래를 파서 물이 잘 고이게 해둔 구덩이에 넣어뒀다가 집으로 가져갔다.

 

언젠가 민물고기 취재를 다니면서 강원도 평창에 사는 노인이 해준 말을 받아 적은 적이 있다. “멱 감으면 모래에 묻혀 있는 모래무지를 밟는 수도 있지. 그러면 그거 손으로 움켜잡지.” 노인 말씀으로 내 어린 시절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름에서 모래 주워먹는 습성 가늠

모래무지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물 속 모래밭에서 산다. 모래 속에 숨으면 밖으로 동그란 눈만 빠끔히 내놓는다. 모래무지가 파고 들어간 자리는 모래가 손등만큼 불룩 솟는다. 헤엄칠 때도 모래바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몸이 보호색을 띠어 모래 색깔이랑 비슷하다. 모래 바닥에 가만히 있으면 잘 안 보인다. 모래에 몸이 다 안 묻히더라도 감쪽같아서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등이 어두운 갈색이고 배는 누런 회색으로 몸통 가운데와 등에는 검은 반점이 나란히 나 있다. 몸통에 6~7개, 등에 5~6개 있다. 반점들 사이에는 작은 점이 많다.

 

모래두지, 모래물이, 모래먹지, 모래마자, 모래막지, 오라막지, 모래마주, 모재미, 새침이, 지역 마다 부르는 이름도 많다. 이름들은 모래무지가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서 분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래물이나 모래먹지 같은 이름으로 모래를 주워 먹는 습성도 가늠할 수 있다. 모래무지는 주둥이가 길고 입술에 작은 돌기가 많아서 터슬터슬한데, 입이 앞으로 쭉 나오면서 바닥에 있는 모래를 집어 먹기 좋게 생겼다. 실제로 모래를 먹는 것은 아니고 모래를 입 속에 넣고서 작은 물벌레나 조류를 걸러 먹고 모래는 아가미구멍으로 내뿜는다. 알은 5~6월에 모래 바닥에 낳은 뒤에 모래로 덮는다. 알은 일주일쯤 지나면 깨어난다. 새끼는 5년 쯤 자라면 20㎝가 훨씬 넘게 큰다.

 

무지막지한 하상공사로 전멸되다시피

모래무지는 물이 맑은 냇물에도 살고 강에서도 산다. 여울에서는 많이 안 살고 물살이 느린 곳을 좋아한다. 옛날에는 아주 흔했는데 개발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냇물과 강에서 모래를 많이 퍼가서 드물어졌다.

 

나는 파주에서도 문산천과 임진강에서 탐어를 하며 자주 잡았다. 하지만 요 몇 년 동안 문산천에서 제방을 넓히고 준설을 하면서 많이 사라졌다. 냇물 바닥을 파헤치는 공사를 하면서 강바닥이 진흙으로 뒤덮히고 수질은 악화 되었으며 수생태계가 파괴되었다. 물고기 종류와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무지막지한 하상 공사로 모래무지가 전멸되다시피 했다. 4대강 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사라지고 생태계가 교란되었을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이들에게서 자연에서 뛰놀며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은 어른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잘 살아보자고 자연을 파괴하는 어른들이 얄밉다.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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