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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㉒ 개리

입력 : 2016-11-28 13:36:00
수정 : 0000-00-00 00:00:00

 

㉒ 개리 




R56 개리, 넌 어디서 왔니?

 

요즘 파주 공릉천에서 기러기 무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무리에 끼어있는 흰기러기나 흰이마기러기도 볼 수 있겠다. 나는 공릉천에서 꽤 여러 종류의 기러기들을 만났다.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는 당연하고, 온몸이 흰색인 흰기러기, 눈테가 노랑색이면서 이마가 흰색인 흰이마기러기, 거위의 조상 개리, 무려 3마리의 캐나다기러기도.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개리다. 몸집은 87cm로 목이 긴 거대한 기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리는 천연기념물 325호로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이자 IUCN Red List에 올라가 있는 귀한 새면서 몽골, 중국의 제일 북쪽, 러시아 남동쪽에서 번식하고 겨울이 되면 우리나라에 찾아온다.

 

2007년 1월 3일 겨울, 개리 R56을 만났다.

우연히 탐조를 하던 중, 하천 갯벌에서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있는 개리를 발견했다. 차를 멈추고 쌍안경에 눈을 맞췄다. 그런데 조금 특별한 개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목에 R56이라는 파랑색 밴드를 하고 있었다. (새에게 밴드를 채우는 이유는 개체 식별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새들의 움직임, 습성, 생활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발신기 장치나 밴드의 총 무게가 새 몸무게의 4%가 넘지 않아야 한다.)

 

왜 R일까? 그리고 왜 파랑색일까? 수소문을 하자 R56 밴드는 러시아에서 달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파랑색은 러시아에서 채운 색을 뜻했고, R은 러시아의 국명 첫글자를 의미했다. 개리는 오른쪽 다리에 은색의 밴드를 하나 더 하고 있었다. 포획을 할 수 없었으므로 은색 밴드에 뭐라고 쓰여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적어도 R56은 러시아에서 우리나라까지 약 7,000km를 비행한 셈이다.

 

밴드를 하고 있는 R56은 어린새 같았다.

머리와 목의 흰색이 옅었고, 몸의 깃털색도 성조와는 다른 색의 깃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새가 왜 혼자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때마다 R56이 머물렀던 장소에 가보았다. R56을 처음 발견한 날로부터 10일이 지난 날에는 R56이 내가 있는 장소 근처까지 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초록색 풀들을 뜯어먹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었다. 잠시 후 개리가 다른 장소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개리가 떠난 자리가 궁금해서 걸어 들어가보았다. 발이 흙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개리가 머물렀던 위치에 갔을 때 나는 보물을 발견했다. 바로 개리의 배설물. 길이 약 5cm에 직경은 약 1.5cm로 거대하고 초록색인 것을 보니 개리의 배설물이 확실했다. 새도 좋지만 새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보물과 다름없는 선물이었다.



 

처음 개리를 본 날로부터 20일이 지난 1월 23일

나는 위장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가까이에서 개리를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장텐트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낚시가게로 갔다. 가게에는 낚시용 의자와 간이 천막이 씌워진 그야말로 낚시를 위한 의자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의 뒤와 옆은 가려지는데 앞이 훤히 다 보여서 그대로 위장을 했다가는 개리에게 들통이날게 뻔했다. 아쉬운데로 낚시용 의자를 사와서 엄마께 남아도는 군복 천으로 덮어 씌워달라고 했다.

 

나는 정말 못 말려서 가끔은 내 주변 사람들을 못살게 한다. 다행히 엄마께서는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고, 심지어 아주 잘 만들어 주셨다. 위장텐트의 옆과 앞은 내부에서 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고 나의 모습을 들키지 않게 검정색 망사로 한번 더 덧데었다. 정면에서 조금 아래쪽에는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망원경이나 카메라 렌즈가 밖으로 나와 관찰과 촬영이 가능하게 완성 되었다.

 

이제 만들어진 위장텐트를 들고 개리가 나타났던 곳 갈대밭에 설치만 하면 된다. 텐트 안에 들어가서 개리를 만날 생각에 서둘러 갔다. 도착해서 설치하고 텐트 안에 들어가서 개리를 기다렸다. 텐트안에 있는데도 너무 추웠다. 하지만 몇시간을 기다려도 R56은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R56은 계속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다시 또 겨울이 왔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R56을 만났던 장소에 가보았다. 그런데 맙소사! 1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R56이 또 다시 발견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3년 째 되는 해부터 그 장소에서 R56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 R56이 지금도 살아있을까? 붉은가슴도요 루파 B95는 20년 째 매년 같은 거리, 같은 장소를 이동한다고 하는데… 지금쯤 R56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파주 어딘가로 이동해와서 몸을 살찌우고 있을까? 

 



#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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