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고정순, 길벗어린이) 독서감상문 - 혹시, 그대도 사랑을 못 믿나요?
『옥춘당』(고정순, 길벗어린이) 독서감상문
혹시, 그대도 사랑을 못 믿나요?
신양수
‘사랑을 믿는 당신에게’ 이 책은 그렇게 만화와 함께 시작한다. 표지에서부터 색감도 문장도 아련함으로 아니, 몽한적으로 독자를 맞이한다. 나는 과연 사랑을 믿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해두자. 이 책은 그런 사람에게 보내는 서신 같은 책이니까.
전쟁고아인 고자동과 김순임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세대를 거쳐 아버지, 나와 이어지는 일련의 삶이 고자동이고 김순임, 고상권 그리고 ‘나’의 이야기와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고자동의 역할은 시아버지의 삶과 같다는 부등호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결혼하고 시댁에 방문했던 1989년을 기억한다. 헤어진 메리아스가 화장실 못에 걸려 있었고 그 귀퉁이 귀퉁이마다 닦은 오물이 묻어있던 기억. 화장지 두 칸 세 칸의 문제가 아니었다. 화장지조차도 사치였던 시절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시아버지는 북에서 넘어와 혈혈단신 기댈 곳 없었지만 이웃과 이울려 잘 보내시다 치매로 돌아가셨다는 점도 고자동과 같다.
아버님이 치매로 돌아가시고 20년을 넘게 더 사시고 노환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옥춘당의 주인공김순임과 닮아있다. 시어머니는 옥춘당은 제사나 차례에서 혼을 부르는 역할을 한다는 말씀과 함께 단 한 번도 제사상, 차례상에 떨어뜨리지 않고 올리셨다. 의례가 끝나면 한입에 넣을 수 있게 조각난 옥춘당을 검은 봉지에 싸서 두고두고 손자들 입에 넣어주셨고, 며느리인 나에게도 인심을 쓰셨다.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는 그 달디단 맛은 내 삶이 힘들 때 이겨내는 충전이 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는 두 분을 위한 제사와 차례를 지낸다. 그때마다 나는 두 분을 생각하며 옥춘당은 빠뜨리지 않고 올린다. 한가지 달라진 것은 옥춘당은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잘게 부수어 설탕 대신 음식 양념으로 쓴다. 어렇게나 저렇게나 여전히 옥춘당은 우리의 미각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전쟁고아는 아니지만 어려서 엄마를 잃고, 월남 간 아버지를 둔 나는 고아 같은 험난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사랑을 믿는 당신에게’라는 서두에서 주춤거렸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옥춘당의 추억을 소환하면서 주춤거림이 사라졌다. 충분히 나는 사랑을 믿기로 했다.
전쟁고아로 페암으로 떠난 고자동 할아버지는 시아버지가 남긴 인자한 사랑을 소환했다. 소심하여 남편이 유일한 친구였던 아내, 남편이 떠나고 말을 잃고 요양원에서 온몸에 시간이 빠져나감을 오롯이 느끼며 사라진 김순임은 소리 없이 온 정성과 친절을 가르쳐 주셨던 시어머니를 기억하게 했다. 옥춘당의 선명한 색감이 나의 기억을 소환하고 좀 더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역사 속에서 있었던 전쟁과 현대화와 발전 그 과정이 이 책에서는 한 개인의 인생을 통해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그 역사는 옥춘당을 따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슬픔, 때로는 기쁨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이 베풀었던 친절이 모이고 모여 따뜻한 사회가 되었을 테고, 한 개인의 부지런 함과 성실함이 모여 나라의 발전으로까지 이어져 왔음을 기억하게 하는 책이다. 글보다는 그림과 만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 공감을 불러온다. 그리고 남의 일이 아닌 그대와 나의 삶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옥춘당이 소환한 그리움으로 11월은 충분히 사랑하고도 남음이다. 혹시, 그대도 사랑을 믿지 못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