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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52) 지뢰제거연구소장 김기호

입력 : 2017-02-08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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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숨은 살인자, 지뢰를 캐낸다 



 

지금 민통선 마을 안에 ‘미확인지뢰지대 경고판’이 세워지고 있다. 2월 6일 현재 100여개의 표지판이 설치되었다(9,000여만원 예산, 161개 설치계획이었음). 그러나 민통선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거주하는 마을 주민들이 반발하면서(본지 1월25일 발행 57호 참고), 1사단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협의하여 ‘지뢰가 있다고 데이터가 확인된 지역’으로 입간판을 옮기고 철조망을 같이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지뢰가 인명을 살상하기에 군이 나서서 경고사업을 하려던 것이지만, 지역 거주자와 영농인들에게는 재산권과 영농활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기에 주민과의 협의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었다.


봄이면 봄나물을 채취하거나 농사짓다가 지뢰가 터져 다친다는 뉴스를 해마다 한 두건씩 들었던 것 같다. 보도에는 지뢰가 있다는 야산에 “나물에 욕심내다가” 일이 터진 것으로 표현된다. 또는 표지판의 지시를 무시해서 나무를 하다가, 공사를 하다가 지뢰가 터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두 개인의 잘못이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항공대 김광배교수와 드론 활용 지뢰제거 업무협약(MOU)맺어

민통선안 지뢰문제를 본격적으로 취재하기 위해 김기호 소장을 찾았다. 마침 전날인 1월 31일 항공대 김광배 교수와 업무협약을 맺었다는 소식부터 전해준다.

김기호 소장은 “2004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한국항공대학교 산학협력센타에서 둥지를 틀고 오늘의 한국지뢰제거연구소가 국내 최고의 지뢰제거 전문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이보영 교수, 공학박사, 항공재료공학과 김광배 공학박사가 기술지도를 해주었기에 5종의 지뢰제거장비 개발을 할 수 있었”다며, 김광배교수에게 특별히 감사함을 표했다. 작년 4월부터는 인도주의 지뢰제거장비 및 친환경 지뢰기술연구 등을 위한 MOU를 맺었으며, 이번에 ‘지뢰지대 지형 분석 등 통일이후 생태계의 보고인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드론개발’에 대해 MOU를 맺은 것이다.

 김광배교수는 지난 83년도 K-9자주포와 K-55자주포를 개발, 국산화를 성공시킨 공학박사로, 일본 오사카부립대학 교수, 미 MIT 파견 교수,U-MASS 교환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지뢰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지뢰 없는 대한민국이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연구에 몰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김기호 소장이 철원군 지뢰고개에서 M3 살상용대인지뢰를 발견했다(2017년 1월 9일)

 

간첩 잡던 사람, 지뢰 잡는다

김기호소장은 경북 청송 출신 55년생 청양띠라 했다. 환갑을 넘은 나이인데도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자신을 ‘땅속의 숨은 살인자 지뢰를 캐는 한국의 지뢰킬러’라고 표현했다.

그는 군 기무사에서 30여년간 복무를 한 방첩전문요원이었다. 서부전선에서만 근무하던 그가 어떻게 지뢰박사가 되었을까?

2000년 그 때 경의선 철도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해 지뢰제거작전 명령이 나왔다. 당시 처음 나간 지뢰제거 작전에서 이종명 설종섭중령이 지뢰를 밟았다.

이종명중령은 하체가 나가버렸고, 설동섭중령은 하체만이 아니라 뇌까지 충격을 주어 5세아 정신연령으로 상이군인이 되었다. 지금 그의 종적도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일로 김기호 준위는 공병단장으로 지뢰제거 작전명령에 투입되어 4년간 지뢰제거 작업을 했다. 지뢰제거를 위해 외국 장비를 도입했지만, 수목이 우거지고, 잡풀이 많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아 쓸 수 없었다. 효율적인 제거 작업을 위해 장비를 고민하면서 자신이 직접 지뢰제거 장비를 개발했다.

이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집을 팔았다. 그는 동지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목숨을 걸고 2,000여발의 지뢰를 제거했다.

 

문산에 있던 지뢰제거연구소 옮겨

전역후 2004년 ‘지뢰제거연구소’를 설립했다. 본격적으로 지뢰제거 연구에 몰두하여 6개의 지뢰제거기 발명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지뢰박사’로 불리운다.

지뢰제거연구소는 지뢰제거용 차 등 지뢰제거장비, 지뢰 탐지 장비, 지뢰 보호 복, 보호 헬멧, 보호 신발 등 장비를 갖고 지뢰제거 활동을 하므로, 군공병부대에 비해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지뢰를 제거한다.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전문성이 있었기에, 전역한 폭발물 전문공병 출신들이 김기호 소장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에 김기호 소장은 문산읍 한진상가에 있던 지뢰제거연구소를 옮겼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사무실을 운영하기 어려워서였다.

비군사지역인 지뢰 미확인 지역마저 민간인들이 지뢰 제거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국방부가 동의를 하지않기 때문이다.

민통선 안에서 지뢰제거 활동을 하면서 해마루촌 사람들, 환경운동하는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국군기무사 출신이 지뢰제거 평화운동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 지뢰제거활동으로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톨릭 대상 평화특별상을 받았다.

 

생태지평상, 카톨릭정의평화대상

지뢰제거활동이 시민운동으로 되고, 공익 목적을 좀 더 분명히 하고자 2011년 사단법인 녹색평화연합을 만들었다. ‘자연환경 보호활동을 전개하여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고, 생태계의 보고인 DMZ를 생태평화 세계유산 지정을 추진하고, 지뢰 등 불발병기로부터 사람의 생명 및 신체를 보호하고, 이들 폭발물로 오염된 죽은 땅인 토지와 자연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폭발물을 탐지 발굴 처리하여, 인간과 야생 동물이 건강하고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보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사단법인 산하 기구로 지뢰제거연구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국방부의 지뢰제거 활동에 대한 감사청구, 청원운동, 이라크 지뢰제거장비 수출 및 교육 등 지치지 않는 활동으로 2011년 제28회 가톨릭 대상 정의평화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2014년 10월에는 민간연구기관인 생태지평에서 제정한 생태지평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접경지역 일대에서의 지속적인 지뢰제거 활동을 하면서, 국방부에 ‘유엔 지뢰행동 표준규정’을  적극 알려 민통선 주민의 안전과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위해 노력했기에 수상한 것이다.

이어 2016년 천주교 평화봉사상을 수상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김기호 소장은 “지뢰제거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신에게 재능을 주신 것”이라며 “남은 일생을 지뢰제거 활동에 바쳐 인류의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하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2016년 인삼캐기 행사장 인근에서 지뢰 9발이 발견되었다. (자료화면: tbs)

 

비무장지대 아닌 남방지역에도 75,000여발의 지뢰가 있어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뢰가 매설 된 지역이다. DMZ 66만1천157㎡에는 100만발 이상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되어 1㎡마다 2.3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셈이다. 특히 DMZ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구역)과 후방지역인 남한산성 등 전국 37곳 40여개 지뢰매설지대에 대한 지뢰제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매년 지뢰 폭파 사건이 터지고, 귀한 생명이 사라지기도 한다.

현재 비무장지대에 묻혀 있는 108만 3,000여발의 지뢰 말고도 서울 우면산, 인천 문학산, 경기 성남 남한산성, 충남 태안, 대구 최정산, 부산 장산 등 36곳에 7만 5,000여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국방부가 2001년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의 지뢰사고 희생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1만여 명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2000년 이후 지뢰사고로 숨지거나 다리를 절단한 희생자만도 100여 명에 달한다. 2016년 한 해 동안에만 민간인 지뢰 폭발 사고로 1명 숨지고 3명이 신체 일부를 잃는 중상을 당했다.

국제사회에 매설된 대인지뢰는 1억만 발에 이르며, 매년 약 2만 명 민간인 지뢰사고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오타와 조약 가입하라’

지난 1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2017 아시아 지뢰제거 파트너쉽 구축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의원의 주최로, 지뢰 피해자와 녹색평화연합(지뢰제거연구소), 평화나눔회, 지구촌공생회, MAP(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연세대동서문제연구원 NPO센터가 참가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피해자의 증언에 이어, 오타와조약(비인도적 재래식 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조약)가입과 민간 지뢰전문 NGO(비정부 기구)에 제거작업을 이양하여 지뢰제거 작업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국에 대인지뢰 희생자가 없다며 오타와조약가입을 피하고 있다. 조재국 평화나눔회 이사장은 “오타와조약에만 가입해도 지뢰 피해를 예방하는 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직접 개발한 지뢰제거굴삭기

 

'지뢰제거 민간 이양, 일자리 창출'

이날 김기호 소장은 지뢰제거 작업을 민간에게 이양하여, 국토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작년 1년 동안 300여발의 지뢰를 제거했을 뿐이다. 작년 11월 30일 강원도 철원군 지뢰가 터져 트럭운전석이 파괴되고 운전자가 사망했다. 이곳은 육군 공병대가 6개월동안 3,800여만원을 들여서 지뢰제거 작업을 완료한 곳이었는데, 지뢰가 터진 것이다. “그러니, 국방부는 작전지역을 집중 관리하고, 일반 시민들을 위협하는 DMZ 인근 비작전 지역이나 후방지역 등지의 지뢰제거 업무는 과감하게 민간지뢰전문제거 NGO나 기업 등에 이양해야 한다”. 군부대는 일반병사를 교육시켜 제거작업에 투입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고, 사고발생을 우려한 군의 기피현상으로 제거작업이 더딘 것이다. 그러나 제거 작업을 민간지뢰 전문기구에 이양한다면 제대군인 등의 재취업 방식으로 연간 2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며, 연간 500억원씩 투자할 경우 10년이면 비작전상 혹은 후방지역 등지에 숨어 있는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2017 아시아지뢰제거 포럼

 

“개인 안보없이 국가 안보 없다.”

그는 오늘도 부지런히 뛰고 있다. 육순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쩡쩡한 목소리로 말한다.

“M14 대인지뢰는 미군이 설치한 것이다. 40만발의 지뢰를 제거하는 책임이 미군에게 있다. 엄마들이 미사단앞에서 시위를 해야한다.” 고 말했다.

“왜 엄마들이 나서야한다는 거죠?”

“첫째, 자기 아들이 군대 가서 발목이 잘릴 수 있으므로. 둘째, 야산에서 나물 캐다가 발목이 잘릴 수 있으므로.” 명쾌하다. 국제사회가 대인지뢰 전면 금지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오타와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 아들들을 위해서 엄마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뢰제거 활동을 위해 일본 아줌마들은 지뢰제거연구소를 찾아오기도 한다면서 대인지뢰가 터져 처참하게 부상당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런 지뢰가 남한에만 100만발이나 있다니....

파주만 해도 민통선 전역, 탄현면 보현산(40발 미수거지역), 96년 98년 홍수로 법원읍 노고산과 광탄면 보광사 뒷산의 수백발의 지뢰가 원래 매설지역에서 1000배의 넓은 범위로 유실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라는 개인 안보 없이 나라 안보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지뢰제거에 목숨 건 사나이. 이미 간암으로 생사를 넘나든 그는 하느님의 주신 소명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지뢰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임현주 기자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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