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 농민 국회토론회 후 ‘접경지농민연합’을 만들었다
“72년동안 한번도 말하지 못했는데 모이니까 되는거야”
접경지 농민 국회토론회 후 ‘접경지농민연합’을 만들었다
지난 8월 19일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접경지역 농업‧농촌‧농민 권리 회복을 위한 법‧제도개선 토론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참가한 농민들도 많았지만 플로워 토론에서 너도나도 발언 신청을 하는 통에 농민토론회 좌장을 많이 한 윤병선 건국대 명예교수가 진땀을 뺄 정도였다. 대부분 60대이상인 농민들은 A4 2~3쪽 분량으로 미리 준비해 발언하기도 했다. 그 열기로 ‘접경지역농민연합’(가칭)을 만들었다. 접경지역농민연합은 올해 안에 창립총회를 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당장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 사업을 하고 필요한 일을 하고 창립 준비를 할 단체이다.
철원 ‘국경선평화학교’에서 9월4일 접경지역농민회가 국회토론회 이후 첫 모임을 했다. 김포, 파주, 연천, 철원, 양구, 포천, 화천 농민회와 강원도연맹 대표들 16명이 같이했다. 접경지역 중 전국농민회총연합 지역지부가 있는 곳은 모두 모였다. 나도 파주농민회 일원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이날 회의에서 접경지역 농민회 대표들은 국회토론회에 대한 소감부터 나눴다.
“좀 늦게 웹자보와 현수막이 나와서 오래 걸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근데도 접경지역 농민들한테 연락이 많이 왔어요. 못간 분들이 많이 아쉬워 했어요. 우리는 민북지역 농민이 몇 명 안되서 신경을 안썼는데 그분들에게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포는 도시화 돼서 (민통선 농지)면적은 훨씬 넓어요. 그리고 기사를 보고 강화 농민한테 연락이 왔어요. 같이 하고 싶은데 개인적으로도 참여가 가능한지 물어 보드라구요. 우리가 논의해야할 것 같아요.”
- 김포농민회 최경채 사무국장
“고민되는 문제 지역별로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농민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게 공통적인데 이것부터,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급한 것부터 해결해야합니다.”
철원농민회 위재호 회장
“외부평가를 전해드리면 국회의원실이나 (패널로 왔던) 행안부, 국회입법사무처도 많이 놀랐나봐요. 접경지역 농민들이 쌓인게 너무 많은 것 같다고들 해요. 파장이 워낙 커서 앞으로 희망을 갖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하면서 힘이 되었고 힘을 많이 받아 왔어요.”
파주농민회 김상기 사무국장
“연천은 국회의원이 같이 하지 않았는데 가기전에 통보는 했어요. 토론회 후에 연락이 오더라구요. 지역구 의원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국회토론회 진행을 했던 강원도연맹 사무처장은 10년 넘게 토론회 진행을 많이 해봤지만 그렇게 열띤 토론회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했다. 접경지역이 많은 강원도라 평소 회의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정도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한다. 토론회 때 발언하지 못한 지역문제들도 쏟아져 나왔다. 국회토론회 플로어 토론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군헬기장과 포격사격장이 온다고 하는데 새로 짓는건지 다른데서 옮겨오는 건지 알 수 없는데 군단장에게 협조요청을 했는데 군사기밀이라고 알려주질 않아요.”
- 화천농민회 조득용 사무국장
사격장 소음 피해는 접경지역은 어디나 부딪치는 문제다. 내가 사는집은 민통선에서 가장 가까운 집인데 사격훈련을 왜 밤에 하는지 모르겠다. 밤에는 소리가 더 잘들린다.
포천시는 윤석렬 정권때 오폭 피해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라는 훈련장이 있어서 포탄이 지붕에 떨어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홍수때 늘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는다. 파주의 경우 민북이남지역 홍수예방을 위해 민북지역 농경지가 잠기도록 설계된 지역도 있고 지천을 통해 역류하여 물에 잠기기도 한다. 어부들은 맑은 날도 북에서 황강댐을 방류하면 어망이 떠내려가는 등의 피해를 입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이건 환경부 관할이다. 대략 회의때 민통선에서 농사짓기에 입는 피해를 말했다.
김상기 파주농민회 사무국장이 국회토론회에서 파주어촌계 장석진 계장이 못온 말라리아(학질) 문제는 이날은 거론되지 않았다.
“오늘 파주어촌계 장석진계장님과 어민들이 오시기로 했는데 말라리아 걸려서 못왔어요. 여러분 요즘에 말라리아에 걸린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접경지역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려요. 남북이 공동방역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여요.”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는 학질이라고 부르는 전염병이다. ‘학을 뗀다’는 말이 학질이 너무 고통스러운데서 유래한 말이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모두 없어진 병이다. 말라이라 모기가 열대지방에 사는 모기이기에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히 더운 여름에 유행했던 전염병이다. 그게 한반도 접경지역에서는 여름마다 말라리아 주의보가 내리고 휴가나온 군인들은 접경지역은 여행금지 지역이 된다.
이날 회의에서는 더 많은 토론회를 많이 하자며 다음부터는 종이신문을 만들어 홍보해 더 많은 농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농민들이 나이가 있기에 SNS로 한계가 있기에 나온 말이다. 전환식 파주농민회 공동대표의 말에는 토론회에서 열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담겨있다.
“나두 그날 계속 손들었는데 발언을 못했어. 하두 여러 사람이 손드니까 내 차례까지 안오드라구. 그만큼 눌렸던 게 많은 거야. 80년 동안 우리 민북농민들은 한번도 말하지 못했어. 혼자서는 숱하게 군하고 싸웠지만 소용이 없었어. 근데 모이니까 되는거야. 접경지역이 모두 모이니까 우리 얘기를 터트릴 수 있었어.”
그날 국회토론회를 추진했던 김상기 사무국장은 그날 토론회 이후 분위기를 전했다. 국회나 정부 관련부처도 놀라서 앞으로 관심갖고 해결해 나가기로 의원실과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와 국회입법조사처는 법제도 개선논의를 하는 자리에 참관하게 해달하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접경지역농민연합’은 이날 연천농민회 이석희, 철원농민회 위재호 두 회장을 공동대표로 파주농민회 사무국장을 김상기 사무국장으로 강순덕 파주농민회 총무가 서기를 맡아 창립총회때까지 활동하기로 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당장 가능한 것부터 해결하기 위해 사업하기로 했다. 법은 바뀌었는데 사단마다 있는 내규는 70년 동안 한번도 바꾸지 않았기에 생기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단들마다 출입규정이 다르다. 파주와 철원은 3개 사단이 있다보니 시, 군과 농민이 모두 힘들다. 파주만 해도 임진강 위 다리를 관할하는 사단에 따라서 출입 규정이 다르다.
또 사단장이 바뀔 때마다 통제 방식이 달라진다. 농사일이 바쁘거나 야간 냉해나 추수철에 야간체류 허가는 법을 바꾸지 않아도 당장 해결 가능하다.
시간이 걸리는 법‧제도개선 사항은 국회의원들 위원회별로 정리해 법안을 상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접경지역 농민들은 정전협정으로 민간인통제구역이 생긴 뒤 한번도 가지 않은 첫발을 72년만에 내딛었다. 접경지역 농민들의 첫 걸음에 응원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