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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강물에 새긴 이야기 ③ 금강산 가는 길(下)

입력 : 2015-06-26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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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지 못한 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아름다움

 

▲허목이 마지막 인생을 보낸 은거당

 

"다음날,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철원 고을을 향해 가다가 용담 고개 위에 올랐더니 동북으로 산이 확 트여 몇 백 리가 훤히 바라다보였다." 윤휴의 금강산 길은 이제부터다. 먼저 벗을 만났고 그리고서야 길을 떠났다. 평생 마음먹었던 곳이다. 일행 모두가 쉰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길을 떠난 뒤 여러 객사와 역사, 경치 좋은 정자를 거쳤고 여기서 앞서 다녀간 이들이 남긴 시문을 감상했다. 금강산에 이르러 만폭동과 장안사, 정양사를 들렀다. 비로봉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유점사를 거쳐 금강산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고성, 양양, 낙산사, 설악산, 춘천을 지났다. 그렇게 들른 고을이 15개 주이고 길은 1천여 리에 한 달이 걸렸다. 여행은 이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내 늙고 병들어 비록 비로봉 절정에 올라 보지는 못했으나, 풍악산 겹겹이 쌓인 구름 속의 산빛이나 늦가을 풍경에 관하여는 그런대로 볼만큼 보았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볼 만큼 보았다고 한다. 이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자기위안일까? 본 것이 꼭 금강산 꼭대기는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들은 길에서 다른 것을 만났다. 삼일포 지나 청간정에 이른 때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구경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경치 좋은 곳은 일찍이 보지를 못했다. 참으로 한평생 제일 좋은 구경이요 천하의 장관이라고 하겠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금강산을 찾아와서 비로봉엔 오르지 못했지만 청간정을 만났다. 목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불구불 가팔라서 꺾이기도 한다. 그러나 길을 가는 사람에겐 준비된 선물이 있다. 그 길 어딘가에서 생각지도 않은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청간정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한다. 여행 끝에 윤휴는 금강산에서 얻은 산마 지팡이를 허목에게 선물로 보낸다. 에돌아온 길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윤휴는 예순이 다 된 나이에 처음으로 정계에 나아간다. 허목은 정승의 지위에 오른다. 소위 2차 예송논쟁에서 남인이 승리한 뒤다.

 

예송논쟁을 왕권과 신권의 충돌, 군주정치와 귀족정치의 대결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군주정치보다 귀족정치가 역사 발전에 부합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맞는 생각일까?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세력은 조선 왕과 사대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인들은 왕의 특권을 인정하는 주장을 펼친다. 왕조사회에서 왕과 사대부가 신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주장은 반면에서 왕과 같은 특권층인 사대부와 일반 백성을 구분 짓게 된다. 반대로 왕의 특권을 인정할 때 왕 아래 모든 사민은 평등한 것이다. 차이는 또 있다. 왕이 사대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은 중국황제 아래서 조선왕이나 사대부는 다 같은 신하일 뿐이라는 철저한 사대를 담고 있다. 반면 조선왕의 왕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조선의 독자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예송논쟁은 신분질서를 둘러싼 계급논쟁이면서 동시에 중국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 논쟁이었다.

 

남인정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윤휴는 정쟁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다. 허목은 많은 동류 남인들이 죽거나 유배된 상황에서 마지막 인생을 은거당에서 보낸다. 그리고 2년 뒤 88세 나이로 운명한다. 지배권력은 점차 노론이 독주하는 방향으로 수렴되어 간다.

 

권력의 흐름과 상관없이 허목의 자취는 뒤로 이어진다. 성호 이익이 사후의 미수를 찾았고, 정약용도 그 자취를 따라 우화정에 올랐다. 허목은 우화정에 부치는 기를 남겼는데 우화정을 세운 사람은 허목의 제자이던 이산뢰다. 소동파의 적벽놀이를 따라하며 그린 겸재 정선의 우화등선과 웅연계람은 우화정에서 시작해서 허목이 놀던 웅연에서 마무리된다. 이때 적벽놀이에 참여했던 신유한은 앞서 이미 미강에서 적벽놀이를 즐겼다. 역시 미수를 따라한 것이다. 유형원 같은 이는 허목에게서 배운 뒤 부안으로 내려가 은거하며 반계수록을 남기기도 했다. 인물들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권력의 방향과 달리 정신사의 흐름은 끊일 듯 끊일 듯 다른 방향을 찾아 이어졌다. 그러다 때때로 돌출해서 시대를 흔들었다. 임진강 건너 금강산에 이르는 길은 지금에 와 더욱 새롭다. 이 변방의 길은 오늘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길은 새로운 길도 아니다. 숫한 사람들이 다니던 마을길이고 여행길일 뿐이다.

 

 

이재석(DMZ 생태평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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