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열의 미디어칼럼(21) 노벨경제학상이 던진 질문: 혁신의 그림자, 불연속적 전환
윤장열의 미디어칼럼(21) 노벨경제학상이 던진 질문: 혁신의 그림자, 불연속적 전환
윤장열 (언론학자)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조엘 모키르(Joel Mokyr), 필리프 아지옹(Philippe Aghion), 피터 하위트(Peter Howitt) 세 학자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공통된 관심은 단 하나, ‘왜 어떤 사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어떤 사회는 정체되는가’에 있었다. 그들은 그 답을 ‘혁신’에서 찾고 있다. 조엘 모키르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단순히 발명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 제도와 문화가 결합된 지식체계의 진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필리프 아지옹과 피터 하위트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동학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산업과 기업이 붕괴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축적 구조가 대신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이들의 연구를 가만히 보면, 자본주의의 활력을 “긍정”하는 측면이 있다. 이를테면, 혁신이 낡은 질서를 밀어내고 생산성을 높이며, 사회 전체의 부를 증대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이론을 오늘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비추어볼 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창조적 파괴’는 여전히 창조적인가, 아니면 파괴만 남아 있는가.
아쉽게도 디지털 시대의 혁신은 더 이상 생산적인 경쟁을 낳지 않는다. AI와 알고리즘, 그리고 데이터 플랫폼은 새로운 시장을 열었지만, 그 시장은 몇몇 거대 기업의 독점적인 공간이 되었다. 구글,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그리고 중국의 몇몇 기업들은 전 세계 정보의 흐름과 인간의 시선, 그리고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불연속적 전환(discontinuous transition)’, 즉 혁신이 체제 자체의 단절을 만들어내는 현실적인 국면이다.
칼 맑스가 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처럼, 스스로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은 기술 발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은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체제적 시도이다. 플랫폼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알고리즘이 인간의 주의(attention)를 통제하며, 노동이 보이지 않는 코드 속으로 흡수되는 과정은 기술의 진보라기보다 지배의 재조직화에 가깝다. 그래서 이 같은 불연속적 전환은 바로 독점자본주의의 재구성이며, 동시에 디지털 제국주의의 출현을 말한다.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의 ‘최고 단계’로 규정한 바 있다. 오늘날 그 제국은 더 이상 군사적 팽창이 아니라, 데이터의 수집과 통제, 인프라의 장악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데이터는 새로운 원유가 되었고, 플랫폼은 그 유통의 항로가 되었다. 혁신의 속도는 경이롭지만, 그 혁신이 생산하는 권력의 집중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그래서 ‘창조적 파괴’는 이제 ‘창조 없는 파괴’, 또는 ‘파괴 없는 독점’으로 변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모키르와 아지옹, 하위트의 이론을 넘어, 정치경제적 독해가 필요하다. 그들이 설명하는 혁신의 순환은 더 이상 자율적인 시장의 자연스러운 진화나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플랫폼 자본이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한 체제적인 자기 구제의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오늘의 불연속적 전환은 단순히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의 위기와 그에 대한 지배적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 불연속의 시대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독점체제를 더욱 가속하고 있는가. AI가 지식을 민주화하는가, 아니면 지식의 유통을 독점하는가. 혁신이 전체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가, 아니면 몇몇 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가.
혁신은 언제나 자본주의의 생명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혁신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점점 충돌하면서, 자본주의의 자기방어 논리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창조적 파괴’는 더 많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불연속적인 전환을 멈추고, 기술을 공공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혁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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