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이야기 <5> 어느 봄날 –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분을 찾아뵙고
어느 봄날 –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분을 찾아뵙고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진화
올해도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시니 이제 양쪽 부모님이 모두 떠나셨다. 살아계실 때에는 무슨 선물을 드릴까, 어디 모시고 가서 구경시켜드릴까, 카드에 뭐라고 쓸까를 신경썼는데, 다 떠나신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와의 추억을 두레박으로 물 길어 올리듯 하나하나 가만히 떠올려본다. 내리사랑이라고 부모님 사랑에 비하면 자식으로서 부족함 투성이인지라 아쉬움을 달래면서 아버지 절친 두 분에게 전화를 드렸다. 무척 반가워하시며 잘 지내냐고, 건강은 괜찮냐고 오히려 내 걱정을 하신다. 목소리가 다행히 건강하신 듯하여 만나 뵙고 싶다고 하였더니 좋아라하신다.
아흔다섯이 되신 두 분을 만나려고 화곡동에 가서 한 분을 차에 모시고 대림동 전철역에서 또 한 분을 태워 내가 이전에 살던, 가난한 우리 동네 명소라고 아꼈던 갤러리 카페에 갔다. 카페 윗층에는 그림액자가 많이 걸려있는 세련된 이태리 음식점이 있어 한 바퀴 구경만 하고, 카페에 내려가 전시중인 그림들 사이에 앉아 두 분은 삼년 만에 회포를 푸셨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서 신식 쿠키를 곁들여 차를 마시는데, 기억력이 아주 좋은 분이 중학시절 친구들 이야기와 근황까지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이야기를 하시고 점잖은 한 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냐고 맞장구를 치신다. 덕분에 아버지 청소년 시절 이야기도 듣고 당시 일제강점기 때 사회 분위기도 알 수 있었다.
보라매공원으로 옮겨 아주 천천히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가 공원에 놀러온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는 아이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멋들어지게 미끄러지는 아이, 여유있게 걸어가는 단란한 가족들을 보시며 공원 화장실 앞의 이끼벽에 감탄하시고, 연못가에서 버스킹 하는 청년들의 음악을 감상하시며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웃으신다. 오랜만의 소풍에 주름진 얼굴 가득 웃음꽃이 핀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어느덧 밤이 되어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두 분을 모셔다드리고 오니 밤 열한시가 되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그분들을 뵐 수 있을까. 구십이 넘은 분들의 나날에 기쁨은 무엇일까. 살아온 삶에 대한 생각은 어떠실까.
그날의 감흥에 젖어들어 며칠 사이에 구십이 넘은 친척 분들에게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기도 했다. 건강이 안 좋아지신 영화감독 임권택 아저씨는 육촌형님 딸 진화를 고맙게도 대번에 기억하시고는 정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으며 “남은 시간 열심히, 보람있게 살아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칠촌 고모님들과 통화하고, 멀어서 찾아뵙지 못한 작은 아버지 댁으로 가서 인사드리고 사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스승의 날 무렵에는 파킨슨으로 고생하시는 대학 은사 내외분을 만나 지내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발목이 아파 잘 걷지를 못해 우울해하시다가 요즘은 다시 자료를 찾고 글을 쓰고 계시다 한다. 해방 이후 정국을 이야기하시며, 내가 관심있는 한반도 영세중립국 통일론을 미국에서 활동한 김용중 독립운동가가 그 당시에 공론화했다고 말씀해주신다. 스승은 언제까지나 스승이시다.
부모은과 스승은을 생각하는 5월, 참으로 많은 인연과 추억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바쁜 게 죄”라는 말이 있다. 바빠서 부모도 스승도 가까운 친척들도 소원해지고 친구들과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한분씩 찾아뵈야지, 마음으로 유념하며 고마운 인연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