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DMZ생명평화순례단장 이은형 신부 - 6.6 평화의날 임진
- 박경만 편집인
- 입력 2025.05.23 23:11
- 수정 2025.05.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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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당장 얘기하니 젊은층 거부감
평화 정착하고 점진적으로 간다면
남북 모두 상생의 길 걸을 수 있어"지난 15일 일산 백석성당에서 고양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은형 신부.
[고양신문] “올해 DMZ 생명평화순례의 큰 주제는 해원상생의 길입니다. 과거의 원한을 풀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뜻이죠. 올해가 광복 80년, 분단 80년인데, 광복과 더불어 이념 갈등으로 서로에게 가한 상처들이 많잖아요. 특히 학살 때문에 생긴 증오심이 대물림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는데, 분단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증폭시킨 원인을 해소하고, 숨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이 종교인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이라고 생각해 디엠지 구간을 걸으며 종교별로 위령제를 열기로 했습니다.”
지난 15일 백석동 성당에서 만난 이은형 신부는 올해 DMZ 생명평화순례 취지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 신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DMZ 전 구간 종주에 나서고 있다. 그는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어느 순간 갑자기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대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평화의 개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로 확장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신부와의 일문일답이다.
❚지난해 4대 종교에 이어 올해 7대 종교가 함께 하는데 종교인들이 DMZ 생명평화순례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각 종교별로 따로 DMZ 순례를 해오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때 남북관계가 너무 안 좋아져 종교인들이 평화를 위해 마음과 뜻을 모으자는 의미에서 전 구간 순례를 함께 걸었어요. 애초 지속할 계획은 없었는데 끝나고 나서 ‘일회성 순례로는 안 되겠다’, ‘해마다 지속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이 나와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니 종교인들이 더 뜻을 잘 모으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4개 종교(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에서 올해는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협의회까지 7개 종교가 순례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길 위의 신부’ ‘걷는 신부’라고 할 만큼 많이 걸으시는데, DMZ 길을 얼마나 걸었나요.
전 구간 종주는 지난해 처음이었고요. 띄엄띄엄 걸은 것은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 평화의 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2013년부터 계속하고 있어요. 저뿐 아니라 성공회 신부님이나 기독교장로회 목사님 중에도 해마다 DMZ 순례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DMZ를 걷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단순히 걷는 게 아니라 순례는 기도, 수행의 의미가 담겨있어요. 성직자로서 순례를 짐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기도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걷고 싶어요. 현대인의 로망 중 하나가 산티아고 길을 걷는 일이라고 하는데, 산티아고 길이 하느님, 절대자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신앙의 길입니다. 이와 견줘 한반도 분단의 길은 아픔의 길이기도 하지만 평화를 염원하는 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MZ 순례 코스는 제약이 많고 인프라가 부족한데 산티아고 길처럼 세계적인 순례길이 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시작 단계고 기반시설이 부족해 어려움 겪고 있지만 의미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민통선 바깥쪽으로 가고 있는데 정부가 길의 의미를 공감해 민통선 안쪽으로 길을 마련해준다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디엠지 길이란 게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길, 죽음을 의미하는 분단선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길이기도 합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순례자가 많아지면 접경지 주민들이 군인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객들을 통해 지역경제가 활발해지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여러 종교인이 함께 걷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전 세계 대부분 분쟁이 종교갈등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우리의 경우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뜻을 모아 평화를 지향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작년에 걸으면서 스님과 목사, 신부가 함께 밥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종교가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 걸으며 생활하다 보면 타 종교인과 친해질 수 있겠네요.
지난해 걸은 뒤 스님이 계신 북한산 쪽 절에 놀러 가 하룻밤 묵기도 했어요. 그때 한 스님이 한국불교가 화엄경을 중시하는데, 온갖 종류의 꽃들이 피어 어우러지는 들녘을 화엄세상이라고 비유했어요. 각 종류의 꽃들이 자기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어우러진 것처럼, 종교인들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꽃망울을 피우며 함께 어우러지면 얼마나 아름답겠냐며,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세상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 아니겠냐고 말이죠.
❚최근 탄핵정국에 개신교의 극우 목회자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
일부 세력이 그런 건데 대표성을 띠고 올라오니 개신교 전체인 양 오해를 받았죠. 개신교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안타깝습니다. 고양종교인평화회의에서 해마다 종교인 평화음악제를 여는데 합창단 구성이 가장 힘든 곳이 개신교에요. 대형교회들이 타 종교, 특히 불교와 한자리 서는 것 자체를 힘들어해요. 상대를 악마화하면 나중에 큰 충돌로 갈 수 있는데 그런 적대적 부분이 늘 아쉽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만나면 통하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자기 신앙을 굳건히 갖되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하고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걸으면서 서로 대화도 나누는지요.
걸을 때는 침묵이 원칙입니다. 수행이란 게 나와 절대자의 만남이고, 나와 자연의 어우러짐이기 때문에 방해할 수 있는 소음을 피하자는 의미에서 침묵을 강조합니다. 50분 침묵하며 걷고, 10분간 쉬면서 대화하는 식으로 이어집니다.
❚남북 평화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본래 천주교 서울교구에서 서품을 받아 7년간 사제 생활을 하다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선교사로 들어가 3년간 생활했어요. 신앙공동체를 잘 구성하고 싶었는데 사정상 돌아와 북한과 가까운 의정부교구에서 민족화해위원회를 맡아 그와 연관된 일들을 2004년부터 해오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고 자라 통일이 가야 할 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자리했던 것 같아요. 2007년 겨울 평양에 처음 갔는데 일행들은 기념품 사려고 상점에 들어가고 혼자서 상점 밖에서 아파트 쪽을 바라보는데 빙판처럼 된 언덕에서 아이들이 비닐포대로 미끄럼을 타고 있었어요.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어릴 적 내 모습 같고 이곳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보다 시대는 뒤처졌지만 그 안에 담겨진 정서나 정감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어요. 그때 북한을 경직되게 바라볼 이유는 없겠다, 북한의 정치체제와 주민들을 바라보는 것이 달라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데 무슨 일을 하는가요.
처음에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북방선교가 목표였어요. 하지만 선교라는 말이 대단히 공격적이고 중국과 북한 쪽의 거부감이 커 평화의 가치를 함께 나누자는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동안 국제사회 연대를 위해 미국, 일본, 바티칸 등에서 심포지엄이나 포럼, 학술대회 등 토론의 장을 많이 만들었어요. 최근에 연구소장을 맡았는데 앞으로는 DMZ 평화의 길을 집중적으로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2년 뒤 수십만 외국청년들이 방문하는 세계청년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데 이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DMZ 걷기 프로그램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꽉 막혀있고 좌우 갈등도 심한데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북한 사람들 만나면 통일 얘기를 참 많이 합니다. 우리도 통일 얘기를 많이 하는데 바라보는 방향은 정반대에요. 각자 자신들 원하는 방식으로 통일 얘기를 하니 갈등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평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로움이 우리 안에 온전하게 자리잡으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부분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휴전상태고 분쟁과 갈등 속에 있는데 우선 전쟁을 멈추고 평화 체제가 확고하게 한 다음 자연스럽게 교류협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통일의 결실이 맺어지겠지요.
❚분단 80년이 되었는데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분단 이후 초기부터 평화에 대한 가치를 중심으로 만남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 동안 체제경쟁을 한 게 아쉽습니다. 김대중 정부 들어 햇볕정책이 시작되어 교류협력을 통해 북에 자극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 게 많은데 중간에 끊기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이 막히고 갈등의 골이 커져 안타까워요. 교류하는 폭이 넓어지고 확대됐더라면 지금은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말이죠. 지금이라도 북한과 가까운 이웃으로서 평화로운 상태에서 교류협력 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리라 기대합니다. 북한도 남쪽 도움이 필요한 부분 있을 것이고,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퍼준다는 게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남은 북을 통해 대륙 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북은 남의 기술력, 자본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거고...
❚젊은 층 가운데 통일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은데요.
당장 통일 얘기를 하니 그렇습니다. 당장 통일 얘기를 하면 경제 격차로 손해를 볼 게 많으니까, 지금도 힘든데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당장 통일이 아니라 평화로움 속에 점진적으로 통일의 과정으로 간다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어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로 바뀌면서 대북정책이 요동쳤는데 남북관계의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겠죠. 현실적으로 안타깝지만 광복과 함께 분단되었고, 미완의 광복으로 미 군정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지금도 미국에 기대고 있는 것이 많잖아요. 트럼프의 정책이 맘에 들지 않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풀 수 있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해봅니다. 북미관계가 풀리면 남북관계는 저절로 풀리는 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안타깝지만 우리의 한계니까요.
❚북한이 헌법도 바꾸고 남쪽과 완전히 단절하겠다고 하는데요.
북한이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오는데 그동안도 서로 다른 나라처럼 살아왔잖아요. 그렇지만 한민족이라는 동질성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이제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인정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나라가 다르게 표현되더라도 넘어설 수 있는 우리 안의 정서들이 있으니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불법단체처럼 규정해 얻는 우리 안의 모순이 너무 많아요. 국보법부터 시작해 자체 역량을 깎아 먹는 부분 말이죠.
❚최근 계엄령을 겪으면서 북에 도발을 유도하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게 계엄령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북을 자극한 건데요. 우리나라가 취약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줬어요. 만약 북이 무력 대응했더라면 국지전이 일어나고 우리 정치체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 있었을 텐데요. 예전에도 북에 총 쏘아달라고 하고 국민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 총풍사건이 있었는데 북이 반응을 안 한 게 천만다행이죠. 안 그랬으면 몇십 년 전 과거로 회귀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겠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새 교황님이 선출되셨는데, 이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조가 이어질까요.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수도회 출신이셨고 지금 교황님도 아우구스띠노회 출신으로 페루에서 오랫동안 선교사 활동을 하신 분이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이어받겠다고 말씀하셨고, ‘레오’라는 이름을 딴 것도 레오 13세 교황 때문이에요. 레오 13세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착취가 심할 당시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담은 중요한 회칙을 발표하셨지요. 지금 교황님도 4차 산업혁명시대에 AI를 이야기하는데, AI 기술 발전은 좋지만 인간 존엄성을 뛰어넘는 것은 안된다고 종교가 경고메시지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십니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좋은 지침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