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35) 11. 고을 수령들이 찾은 임진강

입력 : 2022-02-09 01:44:24
수정 : 2022-02-09 01:44:49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35)

11. 고을 수령들이 찾은 임진강

 

(2) 연강, 연천현감의 임술년 뱃놀이

우화등선. 겸재 정선이 그린 임술년 임진강 뱃놀이

이천 북쪽 임진강 상류를 유람한 이의현은 내친 김에 이천의 남쪽경계로 발걸음을 옮긴다. 학봉산 중대사 복흥루에 올라 멀리 안협을 바라본다. 산들이 펼쳐진 사이로 강물이 긴 띠를 이루며 흘러 내렸다. 아슴아슴 사라지는 산하 언저리에 백년의 절경으로 칭송되는우화정이 있다. 울창한 숲과 산, 강기슭은 온통 흰 자갈이다. 강물은 굽이쳐 돌고, 동쪽으로 큰 내가 흘러오다가 절벽을 지나 정자 아래에서 합류하는데 그곳에는 옛 나루와 다리가 있다. 인적이 없고, 백사장에 투망질하는 몇 사람들이 보인다. 그곳에, 174210월 보름 배 몇 척이 떴다. 배에는 경기관찰사 홍경보, 연천현감 신유한, 양천현감 정선이 탔다. 술과 음식을 실은 배가 따랐다. 호위하는 행렬은 비탈을 따라 구불구불 따라왔다. 배는 웅연을 향해 나아갔다.

 

깎아지른 바위는 구름을 뚫고, 얽히고설킨 고목가지엔 서리가 내렸네. 굽이굽이 둥둥 떠가며 여기저기 바삐 구경하며 배회한다. 횡산을 지나 왼쪽으로 돌아드니 측벽에 비스듬한 소나무 들쑥날쑥 나있네. 고요한 숲속마을에 해가 뉘엿뉘엿한데 그윽한 흥취도 도도히 펼쳐지네. 화로에 숯을 피워 술그릇을 가져오라 부르고 쏘가리 회 치고 노루를 통째로 굽는다. () 여울 물소리는 저녁이 되자 홀연 사나워져 배와 더불어 번개같이 달려 마침내 웅연에서 노 젓기를 멈춘다.(신유한. 의적벽부중에서)”

 

이날은 적벽부로 전하는 소동파의 뱃놀이로부터 660년이 지난 임술년에 날짜도 같은 10월 보름이었다. 배에 오른 장소가 우화정이었으니 이 또한 적벽부에서처럼 우화등선한 셈이다. 배를 탄 사람도 소동파와 같은 셋. 그중 신유한은 글을 짓고 정선은 그림을 그렸다. 정선은 우화정에서 배에 오르는 장면(우화등선)과 웅연에 배를 대는 장면(웅연계람)을 그렸다. 신유한의 글은 의적벽부로 남았다. 최고의 화가와 문사가 임진강에 와 산천의 아름다움과 그곳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문명을 떨치던 신유한은 이때 환갑을 맞았다. 완숙한 경지의 글은 협곡의 물살처럼 세차게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윽한 달밤의 강물처럼 가라앉는다.

 

깊은 굴을 내려보니 암수에서 신비로운 문채를 벗겨낸 듯, 해와 달의 아름다움이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듯, 빛나는 모래는 비단을 펼쳐놓은 듯, 단하는 비단을 이루어 놓은 듯. 기병과 취악대가 언덕을 감싸고, 우리를 맞이하는 등불은 시장처럼 환하네. 진실로 빼어난 광경 물리도록 실컷 보았으니 다시 어디로 가서 아름다움을 구하랴. 밤은 고요히 깊어가 서리와 이슬이 내려 옷에 스며든다.”

 

연천군 웅연. 신유한 등은 삭녕에서 배를 타고 임진강을 흘러 웅연에 도착한다

신유한은 임진강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 연천현감으로 부임한 뒤 여러 차례 강을 찾았다. 그를 강으로 이끈 것은 허목의 자취였다. 신유한은 부임하자마자 은거당으로 가 허목의 유상을 알현한다. 선생의 글과 유품을 보고, 바위 등으로 꾸민 원림을 구경한다. 경관은 십청원기그대로였다. 그리고 몇 달 뒤 웅연을 찾는다. 노새 타고 관아를 나선 신유한은 웅연 포구의 햇살 속에서 허목의 그림자를 찾는다. 그리고 징파강 유람에 나선다. 유람은 허목의 미강범주를 연상시킨다. 임술년 뱃놀이도 소동파의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허목의 것이다. 우화정이 그렇고, 웅연이 그렇고, 그 사이 배가 지나온 장경대와 횡산이 그렇다. 그 길에 소동파를 불러다 기막힌 연출을 한 것이다.

이 뱃길은 지금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 배가 출발한 우화정은 휴전선 북쪽 삭녕에 있다. 웅연은 연천의 삼곶리 강변이다. 이대로라면 다시 임술년이 오더라도 적벽 뱃놀이는 재현할 수 없다. 휴전선만이 아니라 우화정 아래 임진강에는 물막이 보가 가로놓였다. 웅연은 군남댐 수몰지구다. 연강뱃놀이는 분단만이 아니라 현대 문명에도 가로막혔다. 임술년 뱃놀이를 마친 이들은 다시 술병을 들어 취하도록 마신다. 밤 거문고 소리는 맑고 달빛은 환했다.

 

천지는 광활하고 온 세상은 텅 비어 있으므로 강과 산, 바람과 달은 본래 지역을 나누지 않습니다. 적벽의 신선구름 떠가는 하늘에 아득하고 적벽부는 이 세상에 떨어져 남았건만 연강의 오늘밤 달이 배회하는데 뱃고물을 밟으며 창랑가 부르는 것만 못하네.”

 

허목 묘 괴석. 연천현감에 부임한 신유한은 먼저 허목의 자취를 찾는다.

 

이재석 DMZ 생태평화학교교장 [임진강기행],[걸어서 만나는 임진강]저자

#135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