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22> 그 옛날 눈 오는 시골 풍경

입력 : 2018-01-10 19:16:00
수정 : 0000-00-00 00:00:00

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22>

그 옛날 눈 오는 시골 풍경



어머니는 새벽부터 바쁘시다. 사형제 아침밥을 챙겨야 한다. 도시락도 싸야한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쌀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멸치나 다꾸앙 그마저 없으면 김치를 싸주면 된다. 소세지가 먹고 싶다거나 계란 후라이 타령을 해봐도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포기한다. 옆자리 친구가 혹시 장조림이라도 싸오면 하나 얻어먹기 위해 온갖 애교와 협박(?)을 일삼았다.

휴 그놈의 가난이 뭔지.. 나보다 더 가난했던 사람들이 많기에 난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도 언 수도를 녹여 소죽을 끓이신다. 여물을 넣고 물을 붓고 사료 두어 바가지 넣고 끓이면 소들이 잘 먹는다. 소죽솥에 아이들 세숫물을 같이 끓이고 그물을 나누어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그나마 늦게 나오면 찬물 신세다. 목욕은 언감생심. 명절이나 되어야 다라이에 끓는 물 붓고 때를 밀었다. 손은 터서 갈라지고 소죽 끓인 물에 손을 불려 손 때를 밀어 보지만 그놈의 때는 얼룩처럼 남기 일쑤다. 손에 뭔가를 발랐는데 기억이 안 난다. 구르무?


시골 마을까지 전기가 들어오고 곧이어 전화도 들어왔다. 그래봤자 한 동네 한 대. 전화기를 돌려 교환을 불렀다. 서울 거시기 몇 국에 몇 번. 신청을 해 두고 무작정 기다린다.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걸린다. 어떨 때는 교환 아줌마가 잊어버릴 때도 있다. 멀리서 걸려온 전화는  방송을 통해 사람을 부른다, “아아 윗골에 모촌양반 서울서 전화 왔응께 얼른 오시욧! 전화 쪼까 받으시요.” 벌써 사십 년이 흘렀구나. 군대 갔더니 똑같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던데...


신작로가 생기고 다리를 놓았다.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서너 차례. 아침 일곱 시가 첫차다. 막차는 저녁 일곱 시. 다음 차는 9시라 오로지 첫차를 타야했다. 0교시가 뭔지도 모를 때 학교에 여덟시도 되지 않아 등교했다. 선생님들은 모범생이라고 표창도 자주 주었다. 나중에는 어머니까지 상을 받았다. 차장은 장날이라도 되는 날에는 사람을 짐짝 취급하며 창문으로 우겨 넣었다. 학교는 가야 되니깐. 못타고 걸어가야만 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별로 없었다.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 가방을 받아 주었던 여자 친구는 부자가 돼서 잘살고 있다니 다행이다. 교복에 김칫국물 어떡할래?


오늘보다 많은 눈이 내렸다. 차들도 눈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날은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담임은 이들을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방학을 하고 김장을 했다.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었다. 항아리에 살얼음이 얼은 싱건지를 묵어 보았는가? 아니면 말을 하지마라! 고구마 삶아서 싱건지랑 척 걸쳐서 먹으면 절대 체하지 않을낀데... 오늘처럼 눈 오는 날엔 동네 아이들 모두 나와 눈이 다 녹도록 비료부대로 만든 눈썰매를 탔다. 이선희가 부른다. “아~ 옛날이여~~!”



#80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