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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이다 - 발효, 그 잔혹성 있는 감각

입력 : 2015-09-24 12:00:00
수정 : 0000-00-00 00:00:00

9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전미래 개인전



발효, 그 잔혹성 있는 감각 - 정신의 모험



삼합[三合]: 발효의 연식술 Fermentation Party



 





▲그림과 행위예술이 함께 하는 공간, 전미래의 예술에는 2차원과 3차원의 세계가 공존한다.



 




“전미래 씨, 왜 이런 그림을 그리셨어요?”



“발효는 이렇게 잔혹한건가요?"



 



<2010년 나는 한 번 죽을 뻔한 경험을 한다. 그 후 나는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는 곳에 있음을 느꼈다.어쩌면 나는 그때 죽었는지 모른다. 한 번 흐트러진 시공감은 묘하게도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 내었다. 살면서 죽어가는 시간을 끊임없이 느낀다.>



 



위 글은 전에 쓴 작가노트의 일부이다. 이 글을 인용하여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이 왜 그렇게 잔혹한지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삶이 10년째 접어드는 해였다. 영원할 것만 같던 나의 삶은 심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갑자기 공회전을 하였다. 삶의 지향점이 없어졌다.



 



중환자실 담당의사는 내가 병원에 들어온 날부터 일주일 동안 죽을 뻔한 상황을 약물 수치로 보여주며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이상 죽음과 삶 사이 여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식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나의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맞붙어 내쉬어졌다 들이켜졌다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탐미주의(耽美主義), 무목적적 표류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어떻게 감염되었던 것일까?



귀국 후, 동료 작가들과 우연히 가게 된 영등포 신길동 홍어집에서 발효된 홍어를 먹게 되었다. 끔찍하게 느껴졌던 삭힌 홍어 한 조각이 주는 끔찍한 두려움은 곧 쾌감으로 바뀌며 얼얼해진 나의 몸이 무질서와 혼란으로 즐거워 지기 시작했다.



 



홍어를 먹으며 느끼는 쾌감은 사실 극한의 괴로움과 동시 발생한다. 미생물들로부터 발효되어 성질이 변한 홍어는 그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다.



 



맛있는 것과 맛이 아닌 것. 상한 것과 싱싱한 것. 성스러운 것, 비천한 것, 성스러운 것.. 이 모든 것을 비껴가는 듯 포괄한다.



 



나는 사실 오래 전부터 약간의 정신질환 증세(결벽증)를 앓고 있는데, 그로 인해 더럽거나 성질이 불분명한 것을 만지거나 입에 대는 것을 극도로 역겨워 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런 것들을 만지거나 입안으로 삼키면 하루 종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했던 몸이다. 그런데 이젠 삭힌 홍어가 내 몸을 오염시켜서 몸에 고통을 없애고 영혼에 골칫거리를 없애는 것이다.



 



<어느 여름밤 영등포 신길 4동.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 쾌쾌하고 구릿한 냄새가 나는 홍어집에 들어섰다. 푸르스름한 형광등이 연신 쏘아대는데 이 홍어집은 여간 침침한 것이 아니었다. 하얀색 접시 위에 나온 홍어는 도톰한 살빛 사이로 냉렬히 삐쳐나오는 붉은빛과 투명한 회색빛이 어우러져 단번에 식욕을 잘라냈다. 도저히 입에 댈 수 없을 것만 같아 주위를 빙-둘러보는데 내 또래의 여자가. 이상한 리듬이 나오는 헤드셋. 두꺼운 안경 밑으로 시선이 걸쳐져 있는 책. 언저리에 거의 비워진 홍어 한 접시 와 막걸리 세 병. 비현실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이후로 사실 그날의 기억은 몽롱한 감각으로만 남아있다. 홍어의 색은 공포스러웠고, 그 향기는 나를 분열시키고 정신을 마비시켜버렸다. 그것이 내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카오스를 느꼈고 바로 입안으로 퍼지는 저릿한 두려움은 곧 나의 입천장과 혓바닥을 쓸어내려 내 살인지 네 살인지 모를 덩어리로 오독오독 씹고 있었다.



홍어 3점을 넘기며 우리는 언어의 구조를 잃는다. 그저 (아흐……..)하는 이상한 시[詩]를 읊을 뿐이다. 내 몸을 타고 나오는 신의 언어가 절로 구사된다.



(아흐……..) 영성체를 받들어 비로소 우리는 숭고한 삼합이 되어지니, 고여있던 나의 욕망들이 승화되고 통합과 집중 그리고 오르가즘을 느끼며 비로소 7개의 차크라가 열린다.



Sublime Trinity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숭고한 삼합- 성부 성자 홍어 - 쾌쾌하고 싱싱한 저승내는 내 몸 안에 서서히 퍼진다.>



숭고한 三合 [발효 연식술l] 퍼포먼스의 script 일부.



 



<우수와 정신적 암흑과 억압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뇌는 불꽃을 튀기고 모든 활력은 촉발적으로 긴장한다. 삶의 감각과 자의식은 번개처럼 이어지는 매 순간 거의 10배로 증가되었다.>



도스또예프스키. 백치.



 



위의 인용구는 역시 내 작가노트의 일부이다. 이것이 나에게는 스트레이트한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에서 무엇인가 그로테스크한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작가로 전환시킨 중요한 지점이다. 지독하게 순수와 오염이라는 이분법에서 "순수에의 지향"을 극단적으로 추구했던 내가 홍어를 먹고 나서 그 화학적 맛의 오묘함이 이상하게도 내 몸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소용돌이치던 용광로로부터 주이상스[향락]의 분출을 낳았고, 그로부터 나는 순수와 오염이라는 오랜 신경증으로부터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양자택일'이라는 단순한 선택에서 '물극필반'이라는 다소 복잡한 선택으로 나아간 것이다. '물극필반'이란 "하나가 극단에 서게 되면, 그 반대의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고통과 쾌감이라는 날카로운 구분도 이 불꽃의 용광로 속에서는 다시 회오리치기 시작하면서 두 번의 '뻥' '뻥'하는 감흥의 분출과 함께 전체에 대한 새로운 쾌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일찍이 러시아의 대작가 도스또예프스키가 <백치> 같은 소설에서 '정신적 이상향'의 현실화로 이야기했던 간질발작과도 유사한 데가 있었다.



 



나의 이러한 '발효' 코드의 예술 작업은 고통과 쾌감을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융합하는 차원이며, 그 융합의 과정과 결과에서 그로테스크한 동시에 잔혹한 장면들이 마치 파노라마치듯이 벽면과 바닥과 시공간을 물결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도 관람객들은 이러한 물결치는 흐름 속에서 다시 나에게 궁금증을 표하는 것이 아닐까. 



 



 



글 전미래



 



전미래 작가는






전미래는 2004년 파리국립고등 미술학교에서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Christian Boltanski와 장 뤽 빌무스 Jean Luc Vilmouth, 타카시 카와마타 Tadashi Kawamata의 아뜰리에를 거쳐 2009년 석사학위를 받고, 1년간 포스트 디플롬 과정을 동 대학에서 이수했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 퍼포먼스 프로젝트, 과천국립현대 미술관 『무브MOVE』, 『37회 중앙미술대전』, 프랑스 브장송 국제 퍼포먼스 페스티발 『익센트리시티즈 Excentricities』, 대구육상선수권대회 기념전시 『예술의 이익』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였고, 국립현대무용단이 기획한 ‘이미아직’의 무대 미술을 했다.



경기창작센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셍캬트르 아뜰리에CENTQUATRE Atelier JLTVK(파리) 입주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삼합 발효의 연식술



전시 기간 : 2015년 9월 5일 – 9월 29일



후원 : 경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기도



큐레이터 : 양지윤



장소 : 미메시스(출판단지)



 



내 몸이 발효 된다면?






  • <괴로움에 지독한 악취를 풍길 것이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 진물이 다 날 것이다. 모든 것이 분해되며 생기는 틈. 그곳에서 나오는 흐느끼는 소리. 시김새. 그늘을 동반한 흥. 




  • 결코 즐거움을 위한 소리가 아니다. 발효는 증오와 괴로움 한에서 나오는 삶의 리듬이다. 삭아지며 나오는, 죽음과 삶을 끊임없이 왕래하며 만들어가는 리듬이다. > 




  • 작가노트 일부





 






  • 공기 중에 부유하는 미생물들과 효모가 내 몸 안과 밖을 이루고 그것들은 들숨과 날숨 사이 문지방을 바쁘게 넘나든다. 문지방이 벌어지면서 틈은 구멍이 되어간다. 나는 그저 구멍이 되어, 살(la chair)은 흩어져 다시 미생물이 된다. 이들은 누군가를 다시 발효시킨다. 모두 다 흩어지고 다시 만나곤 한다.




  • 작가노트 일부.





 










  • 발효된 살이 다른 성질의 것으로 변하듯, 내 몸은 극에 다다라 바뀌면서, 나의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와 돌아가진 가족들 모두 하나의 유기체로 엮여 보이게 되었다. 나의 선조부터 내 미래의 자식들 모두 들숨과 날숨의 간격으로 만나졌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다. 정신 없이 살은 기화되고 뼈를 이루며 누군가를 잉태시킨다.




  •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내 화폭과 하나를 이룬다(=그림이 그려진 화폭이 아니라 그려야 할 세계).




  • 우리는 무지개로 번지며 빛나는 카오스다. 나는 내 모티프 앞에 서 있고, 나는 나 자신을 잃는다 …>




  • Joachim Gasquet. Cezanne. Ed. Bernheim, 1921. 136.




  • 작가노트 일부





 





작가에 의해 재창조된 것에 생명의 정감과 기호가 깃들어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이 미래에 펼쳐지기 이전에 하나의 신뢰로서 제시되고 전개되는 것이야말로 저의 예술의 절대적 척도입니다. 저는 미래와 연루된 그 신뢰를 '전미래 시제 Futur Futur anterieur’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저는 전미래라는 비전 속에서 시간안무[Time Choreography]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김남수(안무비평)와 인터뷰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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