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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23> 검정 고무신

입력 : 2018-01-24 11:43:00
수정 : 0000-00-00 00:00:00

도시농부 히고니의 텃밭일기 <23>

검정 고무신




흥아타이아표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여름에는 발에 땀이 나면 꼬랑물이 발가락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겨울철에는 발에 새끼를 감아야 넘어지는 걸 방지했다. 지금의 아이젠 역할을 했다. 남들과 바뀌지 않게 쇠꼬챙이를 불에 달궈 신발에 표시를 했다.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자기 성씨를 쓰기도 했다. 새 신발은 닳을까봐 들고 다니기도 했고 공을 차는 날에는 공보다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가기도 했다.

비포장 신작로 길을 걸으며 고무신은 금방 닳았다. 빵구난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때 동네 공동 빨래터에서 시멘트 바닥에 고무신을 문질러 일부러 구멍을 내고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다음 장날 사주기로 한 고무신을 깜빡 잊으면 또 오 일을 기다려야 했다. 10문 7의 고무신을 신었다. 발은 왜 이리 빨리 크는지!

신작로 따라 냇가가 흘렀고 집에 돌아오는 하교길은 물고기를 잡아 고무신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 항아리에 키우곤 했다. 그 물고기는 막걸리 안주가 되곤 했다. 신발 뒤쪽을 구부려 기차를 만든 뒤 냇가 모래사장에서 기차 놀이를 하고 물에 띄워 뱃놀이도 하곤 했다.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동네 처녀는 당산 나무에 목을 매기도 했지만 저수지 뚝방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심청이 흉내를 낸 사람들이 동네마다 있었다.

엿장수나 아이스케키 장사가 왔다간 날에는 고무신이 사라지곤 했다. 사랑방이 파하고난 다음 날에는 자기 신발이 바뀌었다며 온 동네를 돌며 신발을 찾아 헤맸다. 중학교를 가서야 검정 운동화를 신었다. 지금이야 등산화니 축구화, 농구화, 각종 신발들로 넘쳐난다. 나이키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고 울고 단식 투쟁까지 벌이지 않았는가! “프로스펙스라도 사주세요, 제발요.” 부모님 등은 그때부터 휘기 시작했다. 시골 상갓집에서 상여를 매었더니 하얀 고무신에 담배 한 갑, 수건을 하나 얻어왔다. 열 명이 매는 상여도 꽤 무겁더라니깐. 벌써 십 년도 지난 일이다. 짚신을 신어 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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