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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주년특집] 평화와 민주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입력 : 2016-10-31 18: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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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주년특집] 평화와 민주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지난 10월 8일 [높낮이 없는세상], 신문협동조합 [파주에서]와 성산포 신문이 공동주최하여 제주-파주 평화대담을 가졌다. 제주에서는 주민의 뜻을 무시하며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어 10년 넘게 강정평화집회가 이어지고 있고, 이곳 파주는 분단이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실상을 눈앞에서 보며 상채기를 달래고 있다. 최남단 제주에서 접경지 파주의 시민들이 자신의 삶터에서 느끼고 키우는 ‘평화와 민주’가 무엇인지 돌아보며,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하는 길을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주>


▲민통선 해마루촌에서 제주-파주 평화대담을 한 후 기념촬영을 했다


<평화를 품은 집>을 찾다

멀리 제주 성산포신문과 ‘높낮이 없는 세상’ 회원들이 4.3사건 피해자 양경숙 할머니와 함께 파주를 찾았다. 남북이 대치된 민통선안 해마루촌에서의 평화대담에 앞서, ‘평화를 품은 집’을 먼저 찾았다. 명연파 집장은 제주 4.3평화박물관의 제노사이드관을 본 후, 제노사이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아 박물관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로부터 시작된 인종말살 정책은 히틀러로 이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종학살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평화는 몸에 베도록 교육되고, 역사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새겨야만 권력자가 야만적 정치를 하지 않게 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평화를 품은 집'을 찾아 제노사이드 역사를 듣다

 

전진교앞에서 민통선 출입

허가를 받느라 40분을 기다려

평화를 품은 집을 떠나 민통선안 해마루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진교에서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 며칠 전 미리 알려 출입이 허가된 사람들과, 당일 해마루촌 지인을 찾는 형식으로 허가를 받으려는 사람이 섞여 있어 출입허가에 40분 넘는 시간이 걸렸다. 환한 때 전진교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해마루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민통선 출입 신고식을 확실히 한 셈이다.

 

제주-파주 평화대담 ‘민주와

평화는 어떻게 지켜지는가’

해마루촌 부녀회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마을 회관에서 제주-파주 평화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먼저 양경숙 할머니의 4.3 특별증언에 이어, 네 분의 평화대담이 있었다.

 

 
 ○발제1: 양윤모/ 강정 평화영화제 기획자: '우리는 왜 강정 싸움을 멈출 수 없는가?'.
 ○발제2: 이재석(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저자): 분단시대 접경지대에서의 삶
 ○발제3: 이승익(시인, 성산포신문 감사): 제주도민이 느끼는 제주4.3
 ○발제4: 김광종(성산포신문 편집국장): 제주4.3과 제주 해군기지, 끝나지 않은 세월 그리고 사드



▲제주-파주 평화대담에서 발표하고 있는 양윤모 영화평론가

 

평화와 통일을 꿈꾸며

접경지에서 잠들다

4분의 발제에 이어 미주에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액션원코리아의 정연진 대표의 활동 소개가 있었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파주에서」 편집위원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날 제주에서 성산포신문에서 협찬한 말고기 불고기와 파주막걸리를 곁들어 접경지의 밤 이야기는 늦도록 이어졌다. 제주와 파주, 로스엔젤레스를 넘나들고, 시인과 농부와 주부와 영화평론가, 그리고 고교생으로 이어지는 대화로 마음과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통일촌과 남북한 출입국

사무소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다음 날 아침 산책으로 해마루촌 뒷산에 올랐다. 제주에 태어나서 태어나서 가장 북쪽으로 나들이 하신 양경숙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눈을 깜박이며, 눈물을 지었다. 당시 대학까지 나왔던 인텔리인 두 남동생이 4.3 당시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혹시라도 북쪽으로 끌려갔던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살아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며, 지난 세월을 한탄했다.

민통선 안 또다른 마을인 통일촌에서는 멀리 나란이 서 있는 태극기와 인공기를 보며, “이렇게 가까이 있는 북한 땅을 원수처럼 등돌리고 사는 것이야말로 더 어려운 일 아닌가”하는 질문이 나왔다. 남북한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통행이 끊겨 휑하니 비어있는 아스팔트 위에서 양윤모 평론가가 통일기원 3배를 올리자, 정연진 대표 등 여럿이 이어서 큰 절을 올렸다. 이 길이 뚫려 개성공단이 재가동 되고, 남북간 교류가 활발해진다면 남북간 분노와 증오가 줄어들지 않겠는가? 서로의 마음이 오고가면서 통일을 국민의 힘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출입국사무소의 닫혀진 가드레일을 장풍으로 날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문닫힌 남북한출입국사무소 앞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큰 절을 올리는 양윤모 영화평론가


우리도 임진강처럼 남북으로

흐를 수는 없을까?

고구려 덕진산성에 올라 남북으로 흐르는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우리도 강물처럼 남북으로, 북남으로 흐르는 상상을 해봤다. 덕진산성은 예로부터 개성과 함께 국난이 있을 때 나라에서 평안을 비는 굿을 하던 성스러운 곳이라 한다. 이곳에서 초평도와 멀리 임진강 하구가 멋진 곡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 하구를 홍수를 이유로 준설하겠다하여 농민들이 ‘임진강지키기농민대책위’를 구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제2의 4대강 사업’이라 분노하였다. 이어 청백리의 상징인 황희정승의 사당인 반구정을 들렀다. 갈매기와 더불어 노닐었다는 반구정 정자에서는 보면 철책선과 임진강이 아무렇지 않은 듯 평화롭게 나란이 있다. 철조망 너머로 장단반도에서 날아오는 갈매기가 보이고... 저 강과 저 새들은 이념으로 너와 나를 가르고, 미워하지 않건만....

 

‘민주와 평화’의 씨앗은

계속 자라날 것

제주와 파주로, 또 서울로 헤어졌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에 피어난 ‘민주와 평화’의 씨앗은 계속 자라날 것이다. 양윤모 평론가가 남북한출입사무소앞에서 108배를 하자는 제안이 머리에 남는다. 무엇이 되었든 국민으로서, 민주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해야하겠다는 생각을 같이 나누었으니, 이제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와 이 역사는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아온 시공이므로,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하므로, 내가, 우리가, 멋지게 살아야 할 것이다.



 



글· 사진 임현주 기자


#51 창간2주년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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