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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⑱ 북·중군묘지평화포럼 상임운영위원장 묵개 서상욱 북·중군묘지평화포럼 상임운영위원장 묵개 서상욱

입력 : 2015-06-24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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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만장을 세워 북으로 걸어서 넘어가고 싶다"

 


  

중국인들이 물어물어 찾아오는 파주 적성 북중군묘

2011년, 중국에 교환 교사로 갔었던 친구가 북중군묘를 물어보았다. 중국에서 알게된 중국인이 얼굴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묻혀있는 묘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본 북중군묘지는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 55번지에 있었다. 파주 원주민들도 이 북중군묘를 알지 못해, 문화관광과, 군부대, 동아일보 기자 등등을 수소문해서 겨우 찾아갔던 터였다. 오래되어 쪼그라든 봉분에 밑둥이 썩어가는 흰 막대 에 ‘무명인의 묘"라고 쓰여있었다. 제 1묘역으로 북중군의 유해를 안장할 수 없어서인지, 제 1묘역에서 밭뙤기 하나를 빙 돌아서 가야 제 2묘역에 갈 수 있었다.

 

▲묘역이 두 군데로 나눠져있다.

 

유복자여서 얼굴 한 번 못보았다는 아버지를 찾아 온 중국인이 대단하다 싶었는데, 그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묘역 곳곳에 중국 담배꽁초가 있었고(담배에 불을 붙여 무덤가에 꽂아두어 남은 꽁초), 중국인들의 흔적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부러 이 묘역을 찾아 한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북중군 묘지는 6.25 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를 안장한 곳이다. 제네바 협정에 따라 1996년 조성됐다. 총면적 6099㎡(약 1845평)인 이곳엔 총 1102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다. 중군군 유해 437구는 작년에 송환되었다. 이들 묘비는 살았을 때 못간 고향을 향해 북한 개성 송악산 쪽을 바라보고 있다.

 

▲북공군묘지 안내판

 

묵개선생이 묘역 청소를 하고 천도제를 지내다.

묵개 서상욱 선생은 파주 적성의 ‘금강사"에서 거처를 하면서부터 이 북중군묘(지금은 적군묘라 한다)를 2011년부터 천도제를 지내고 묘역을 정비해왔다. 가을에는 낙엽을 쓸고, 겨울에는 눈을 쓸고, 새벽 2시면 묘역에 나가 천도제를 지냈다.

 

도대체 묵개선생과 북중군묘는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묵개 선생은 처갓집 장인이 오랫동안 주지로 지냈던 파주 금강사에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었다. 2011년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정범진 선생 77세 희수연을 이 금강사에서 했다. 후학들이 금강사에 모여 재즈음악도 연주하고, 한시도 낭송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에 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하는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영혼들이 법당에 가득 들어와 둘러싼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주 섬찟했다. 희수연 잔치가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불러들인 셈이다. 알고보니 금강사 인근에 중공군과 북한군의 유해를 안장한 북중군묘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 날 이후 전쟁이 끌여와 죽은 적군 영가들의 위령제를 지내주게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 2시 반쯤 일어나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임진강 일대의 강둑길과 들판 길을 걸어 다니면서 ‘영가들이여 이제 그만 저승으로 잘 가소서!"하고 염원을 했다. (월간중앙 2013년 12월호, ‘파주 적군묘지 보살피는 묵개 서상욱" 조용헌 원광대불교학박사 글에서 발췌 인용)

 

‘북중군묘지평화포럼" 만들어 매달 모임과 참배활동

이 일을 계기로 묵개선생은 6.25때 참전했다 죽은 북중군묘역의 영혼을 달래고, 상처를 보듬어 줘야 통일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후 권철현 전 주일대사를 대표로 엄기영 전 MBC사장, 조희문 인하대교수, 이운하 세종재단 상임이사, 신성대 동문선 대표 등과 함께 ‘북중군묘지평화포럼"을 만들고, 묵개선생은 상임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포럼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분단이 풀어지는 길은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화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중국 대학생 등을 초대하여 위령제를 지내는 등의 활동으로 AP, AFP, 대련방송, 연길방송, 월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포럼 대표인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2013년 국방부에 묘지 재단장을 공식 건의했다. 묘지 문제가 공론화하자 국방부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5억 원의 예산을 들여 묘지를 개선한 것이다. 그러나, 6.25 참전전우회 등 일부 단체의 몇몇 회원들은 북중군 묘지 재단장 추진에 반발하면서 묵개 선생에게 "그렇게 시간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유엔군 묘지에 가서 위령을 하라"며 항의했다. 묵개 선생은 "자신과 싸우다가 죽은 적에게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는 게 진정한 용사"라고 설득하여, 항의하던 그들이 오히려 북중군묘역의 벌초와 재단장을 도운 일도 있었다.

 

▲올 4월 11일 영국군 크로스타샤 전적비에서 참배하고 있다. 

 

중국군 유해 송환 두고두고 아쉬어

중국군 유해 송환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의 회담에서 급작스레 제안하여 일어난 일이다. 땅도 잠드는 동짓날 무덤을 파헤친 일에 대해 묵개선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했다.

 

‘임진평화제"에 참여했던 중국유학생들이 유해를 송환해도 고향을 찾지 못할 것이라며, 여기에 두고 기리자는 의견을 냈으나, 중국군 유해는 2차에 걸쳐 송환식을 하면서 중국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지금 그 유해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중국군 유해 11만 4000구(추정)가 한반도에 묻혀 있고, 북한은 200여 곳에 중국군 기념지와 묘지를 조성했다. 마오쩌둥의 장남도 북한에 묻혀있지만, "전쟁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냥 조선(한반도)에 두십시오."라고 딱 잘라 말했다는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유해송환이 무슨 의미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작년에 송환되어 유해가 없는 중국군 비석 

 

"영혼의 만장을 세워 북으로..."

묵개 선생은 경북 상주가 고향이다.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다니다가, 40세 무렵에 사회생활 전반이 궁지에 몰려 자살하려고 오대산에 들어갔다. 산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 전라도 일대에서 3년간 거지 생활도 했고, 구당 김남수 선생에게서 뜸과 침을 배워 의술에도 능통하다. 문,사,철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고, 서화에도 능하다. 그는 지금 금강사가 철거되는 바람에 파주를 떠나있으나, ‘북중군묘지평화포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4월 권철현 전 주일대사를 비롯한 포럼 회원들이 영군군과 북중군묘역을 참배하였고, 6월에도 참배하였다. 이제 곧 연천에 거처를 마련하게 될 그에게 꿈을 물었다.

 

"공부해왔던 것을 자료로 만들어서 정리해서 남기고 싶고, 또 다른 하나가 있다면. 한국 전쟁에서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은 영혼들을 데리고, 내가 영혼들의 만장을 세워서 휴전선을 걸어서 넘어가서, 그 고향에 가서.....유해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유해를 찾은 사람은 다행인데, 몇 백배 되는 유해를 찾지 못한 더 불쌍한 영혼을 데리고, 고향방문을 하고 싶다. 만장을 상징적으로 해서 북으로 찾아가서. 곧 실현되리라 생각한다. "

 

영혼의 화해로부터 통일을 이루려는 그의 꿈은 한국전쟁으로 죽어간 50여만의 영령들이 확실히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陽光滿墓園 / 和平偉友來春風 / 誰阻情信愛

햇살은 묘원에 가득한데.... 평화의 위대한 벗이 춘풍을 데려왔네. 정과 신의와 사랑을 누가 막으리" (묵개 시)

 

 

글 사진 임현주 기자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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