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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문화 리뷰 <11> ‘빠순이’는 더 이상 무시받고 싶지 않다

입력 : 2016-04-29 11:40:00
수정 : 2019-09-07 03:27:13

흔한 고딩의 문화 리뷰 <11>

‘빠순이’는 더 이상 무시받고 싶지 않다

 

 

아이돌 팬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빠순이’라는 단어는 한번 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10대 여자아이들에게 많이 붙여지는 수식어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운동선수나 가수, 배우 등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2000년대 초 등장한 H.O.T,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을 적극적이고 열성적으로, 어떻게 보면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소녀 팬들을 지칭하며 처음 나타났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 말에는 비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자기 일을 등한시 하면서까지 연예인만 불러대며 어리석은 사랑에 빠진 한심한 여자아이들’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부패재단 퇴진시위’가 ‘젝스키스 해체 반대시위’로 퍼트려지고

‘젝스키스 해체 반대 시위’로 알려진 사진 한 장이 있다. 교복을 입고 도로위에 드러누운 여학생들을 보며 사람들은 ‘빠순이’들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 신나게 얘기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들은 젝스키스의 해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패재단 퇴진시위’를 하던 중 찍힌 사진을 누군가 ‘젝스키스 해체 반대 시위’라며 퍼트렸고,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학생들을 욕하며 그들의 행동을 폄하했다. 그 곳에 누워 있던 것이 어린 여학생들이 아닌 나이 많은 어른들이었다면 오랫동안 오해받으며 온갖 욕을 먹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 사진 속 행동의 의도를 왜곡해 인터넷에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까이게 만들었을까.

 

 

연예인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조공’ 문화

팬들은 연예인이 생일이 되면, 돈을 모아 일명 ‘조공’을 보낸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이 행동은, 저 연예인이 너네보다 돈이 많다, 그래봤자 연예인은 네 존재도 모른다는 등의 얘기로 무시당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 ‘조공’은 돈을 모아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으로 기부재단 또는 자선단체 등에 기부를 하는 방식이 많다. 팬들 스스로 좋은 팬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학생의 문화생활이 왜 비하의 대상이 되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 팬들이 빠순이 소리를 듣는 일은 드물지 않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모으고, 콘서트에 가 야광봉과 슬로건 등을 구입하면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빠순이’가 되고 그들의 사진과 소식을 기다리며 설레 하면 ‘자기 일은 뒷전인 자기관리 못하는 빠순이’가 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것을 취미로 삼는 것에 대해 남들에게 이토록 참견당하는 것은 10대의 문화뿐일 것이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에게 영화를 위해 얼마를 쓰는지 계산하며 욕하지 않는다. 게임이 취미인 사람들이 게임에 얼마를 바치는 지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게임에 백만원을 썼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을 욕할 자격이 없다. 팬 문화도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10대들이 스타를 위해 얼마를 쓰던 욕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문화생활이 비하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저 그 아이들이 만만하기 때문이다.

 

 

연극 ‘보도지침’ 프로듀서가 한 말

범위를 조금 넓혀 20대 여성까지 포함시켜 본다면, 뮤지컬과 연극 얘기가 빠질 수 없다. 3월부터 시작한 연극 ‘보도지침’의 프로듀서는 ‘공연계에는 전반적으로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가벼운 공연들만 넘쳐나는 걸 보고, 그 상황을 탈피해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 문장에 지적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젊은 여성들은 가벼운 공연들만 본다.’는 근본을 알 수 없는 편견과 ‘현재 공연되는 작품들은 가벼운 공연들이다.’하고 다른 공연에 대한 비난이 들어있다. 더구나 공연계의 주 고객이 젊은 여성인 것은 절대 문제될 것이 없다. 더 웃긴 것은, ‘보도지침’의 예매자 중 97.3%는 여자였고, 20대의 비율이 32.9%였다. 프로듀서의 논리에 따르면 연극 ‘보도지침’은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가벼운 공연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밴드 ‘쏜애플’의 보컬은 여성 뮤지션 얘기를 하며 ‘음악에서 자궁 냄새가 나면 듣기 싫어진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쏜애플’ 공연의 관객들은 대부분이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여성을 비하했다. 그들이 그동안 ‘여성’팬들을 어떻게 바라봐 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문화가 하위문화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통계만 보아도 어린 여성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나이ㆍ성별별로 2015년 문화예술 관람 통계를 확인하면 20대 여성의 90%가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했으며 평균 관람 횟수는 12.2, 10대 여성의 경우는 89.9%가 관람, 평균 관람 횟수는 9.0%로 모두 높은 비율을 보였다. 

 

10대들의 대표적인 문화인 팬덤 문화도 집단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공동체로 인식된다. 또한 팬덤 문화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도 많다. 우리들의 문화가 그저 어른들의 하위문화로, 수동적인 문화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문화예술 분야의 주체이자 두터운 소비층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앞으로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꺼내는 어린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은 더 이상 돈을 벌기 싫다는 뜻으로 해석될지도 모른다.

 

                                          조은현(고1) 파주에서 teen 청소년기자

 

 

 

#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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