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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 <27> 여성과 픽션

입력 : 2018-01-25 15:00:00
수정 : 0000-00-00 00:00:00

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 리뷰 <27>
여성과 픽션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여성과 픽션, 이 주제를 보자 생각난 것은 내가 늘 고민하는 ‘영화 속의 여성’이었다. 여성이 픽션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이 남성을 다루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내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알게 됐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다. 옥스브리지의 화려한 오찬과 펀엄의 초라한 만찬을 비교하며 ‘왜 여성은 가난하고, 대체 언제부터 가난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성은 돈뿐만 아니라 직업, 권력, 교육 받을 기회 심지어는 자기만의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다고 전한다. 여성이 픽션의, 넓게는 예술의 주체가 되지 못한 것은 재능의 부족이 아닌 전적으로 그런 기회와 여지의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을 펼쳐내기도 한다.

장르가 무엇일지 혼동될 정도로 풍부한 이야기와 다양한 방식을 이용한 설명에 나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즐겁기도 했다. 한심한 주장을 계속해서 읽으면서도 버지니아 울프는 단 한 번도 한심하다거나 쓸모없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고상하게 비꼬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얼마나 똑똑하고 유머감각까지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노신사가 과거에 ‘고양이는 사실상 천국에 가지 않는다’고 얘기한 사실을 끌어올리며 그 주장이 얼마나 권위 없는지 강조하며 ‘그들이 접근하면 무지의 테두리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지요!’하고 한껏 우습게 만들었다. 여성의 작품이 여성의 서명 없이 출간된 이유, 즉 여성들이 익명으로 활동해야 했던 이유가 남성이 적극적으로 주입한 관습 때문이라며, ‘여성에게 있어서 최고의 명예는 사람들에게 거론되지 않는 것이라고, 자기 자신은 대단히 많이 거론되는 사람인 페리클레스가 말했지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영화 속에서 여성이 가지는 한정적인 역할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픽션과 논픽션을 포함한 모든 기록 속에서 어떤 식으로 다뤄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여성이 쓴 픽션 속에서의 여성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그렇기에 여성이 픽션을 많이 써야하지만 그것이 왜 불가능했는지에 대해서까지 설명해주었다. 

여성과 픽션으로 시작해 여성이 갖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이야기 했지만, 나는 그 중 재능 있는 여성은 없다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꺼낸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여성이 적다는 이유로 재능 있는 여성보다 재능 있는 남성이 많고, 따라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에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은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펼쳐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셰익스피어에게 셰익스피어만한 재능을 가진 여동생이 있었다고 여동생도 셰익스피어와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겠냐고 이야기한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기회를 부여받게 된 게 얼마나 됐을까? 나는 처음 책을 열어볼 때부터 남자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같은 내용을 교육받았지만, 사실 우리 엄마 세대만 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자식이 셋인 가족이 셋을 모두 교육시킬 여유가 없으면 가장 똑똑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여자형제가 학업을 포기해야했다. 두 직장인이 결혼을 하면 여자가 일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원주에서 듣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희생을 크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 조선시대 후기라고 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겪으며 재정상황이 불안해진 양반가들은 자식들에게 남길 유산마저 없어졌고, 재산을 나눠서 남기기보다 몇몇에게 적당한 재산을 남기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먼저 유산상속에서 제외된 것이 여성이었다. 그 후로 여성이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게 되고, 수많은 권리들을 빼앗긴 것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그 전부터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존재했기에 가장 먼저 유산상속에서 제외됐겠지만, 눈에 드러나게 된 계기가 결국은 가난이니,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500파운드의 확장된 의미가 이런 결과지 않을까 싶었다.




「파주에서」Teen 청소년  기자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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