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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개성공단 이야기 ④

입력 : 2016-05-13 14:03:00
수정 : 0000-00-00 00:00:00

서로 모르는 것, 대화로 풀 수 있어

 

개성시내 풍경.

 

장유유서, 남존여비

홍태표 고문이 여러번 말씀 하신 것은 예절이다.

“공단안에서 나이 많다고 대접해줬어. 북한 사람들도 예절이 발랐지.”

 

개성공단은 남측 사람과 북측 사람이 따로 밥을 먹고, 따로 의료 진료를 받고, 따로 논다. 같은 공장에서도 식당이 다르다. 그런데 홍태표 할아버지는 북측 식당에 가서 그냥 밥을 먹어도 제지 받지 않았다 한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 대접을 톡톡히 받은 것이다.

 

북에는 아직도 장유유서의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홍태표 고문에게 꼬박꼬박 인사하고, 월급 지급 문제로 실갱이를 벌여도 끝까지 설득한 것이다. 남존여비 풍토도 무척 강해서, 공장에 물건이 들어와서 옮길 때도 여자들이 거의 다 하고, 남자들은 옆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담배도 무척 많이 피운다고 했다. 우리네 60, 70년대 가정과 사회 분위기와 비슷하게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남성의 권위적인 행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여지는 풍토인 듯했다. 성적 표현도 거침없이 쓴다고 했다.

 

‘만원짜리 열쇠’가 된 개성남자들

그러나,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5만3천명의 노동자중 여성이 72%, 남자 28%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게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커지면서, 남존여비 사상이나, 남성들의 권위적 태도도 점차 변하고 있는 듯했다.

 

“북한의 가부장제와 남성 지배적 문화가 강한 상황에서 불어닥친 경제난은 여성들로 하여금,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 뿐 아니라 생계유지를 위한 추가노동을 하게 했다. 기혼 여성들이 개성공단에 출근하게 되면서, 한편 남성들에게 일자리가 제한되면서,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그리고 집지키기가 남편의 몫으로 바뀌는 경향이 생겨났다. 북한 사회의 경제난은 유랑걸식자와 좀도둑을 크게 증가시켰다. 절도 방지는 가족의 생계와 관련하여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식구중 누군가는 집을 지켜야한다는 관념이 강해졌다. 일반 주민들보다 생활이 나은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집은 도둑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 때문에 남자들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커지면서 ‘집지키는 멍멍이’, ‘낮전등(필요없는 존재)’ 또는 든든하고 비싼 열쇠라는 의미에서 ‘만원짜리 열쇠’라는 유행어가 ‘고난의 행군’시기에 등장했다.” (서울대 통일평화 연구원의 [공간평화의 기획과 한반도형 통일프로젝트 개성공단],2015년, 332~333쪽)

 

공단 의료실 통합하려다 끝내 무산

개성공단에는 매점이나, 당구장 등 편의시설 뿐만 아니라, 보건시설 등 기본 복지 시설도 있다. 그런데, 이 의료실이 남과 북이 따로 따로 운영한다.

 

“편의시설은 남쪽하고 북쪽의 합작이야. 남쪽은 개인이 하고, 북쪽은 정부에서 관리하지.”

그런데 이 시설에 있는 의료실을 남과 북이 따로 운영하는 것이 홍고문에게는 거슬렀다.

 

사실 공장마다 의사가 몇 명씩 노동자로 취직하고 있으니, 의약품만 구비하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공장에 의료실을 바로 만들 수 있었다. SJ테크가 시발점이 되어 의료실을 만들고, 다른 공장에서도 만들도록 설득했다. 이 일을 추진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다. 공단안 시설도, 개성공단 공장의 시설도 최고급을 쓰도록 해서, 북측의 노동자들이 남쪽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도록 해야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기에, 공장마다 다니며 의료실을 만들고, 셔틀버스도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공단 공동 구역안 의료실은 여전히 남과 북이 따로 썼다. 그것이 불편했다. 홍고문의 평소 신조대로 최고급의 의료시설을 남과 북이 같이 쓰는게 소통을 하는 길이라 보았기에 양쪽을 설득했지만 허사였다. 남북 공동 의료실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김정일이라고 했다가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

“김정일 어쩌구 말했지. 존칭 없이 말이야. 그랬더니 시말서를 쓰라는 것야. 회사 생각해서 내가 어쩌구 하고 써줬어. 그랬더니 맘에 안든다고. 그래서 그 쪽에서 써오면 사인해준다고 했더니 써오드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해줬어. 그러고도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어.”

 

우리도 없는 데서는 대통령 욕한다고, 조선시대때도 임금 욕하지 않았냐고 해도 막무가내라고 했다. 북측 사람들이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권력자에게 하는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매주 1주일에 한 번 4시간 가량 전체 총화(직장장 주관의 교육이나 노동)을 하는 등 사회주의 전통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생계를 책임진다는 전체에 복속되는 문화가 있어서인지 존칭 하나에 대단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10년간의 군대생활로 상하위계 질서가 분명하고, 직장 생활도 군대생활의 연장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김진향 교수가 편집한 [개성공단 사람들]에는 김정은 얼굴이 있는 달력을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가, 공장 라인이 스톱되는 사례도 나온다. 그만큼 그들은 체제에 대해 기계적일 정도로 위계를 지키고 있다고 보여진다.

 

홍태표 고문은 그 경계에서 여러 번 개성사람들과 부딪히며 북측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변하도록 할 수 있는 경계와 아닌 것을….

 

 

 

홍태표 할아버지 

글 임현주 · 사진 통일뉴스 인용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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