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평화는 아름답지 않다” - 장산전망대와 출판단지 탐조-노랑부리저어새, 독수리, 재두루미
“깨진 평화는 아름답지 않다”
- 장산전망대와 출판단지 탐조-노랑부리저어새, 독수리, 재두루미
탐조 장소 " 파주시 출판단지 유수지, 장산전망대
관찰종
- 출판단지 유수지: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백할미새, 힝둥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민물가마우지, 말똥가리, 왜가리, 큰부리까마귀, 오색딱다구리,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 까치, 직박구리(17종)
- 장산전망대: 독수리, 재두루미, 큰기러기, 흰뺨검둥오리, 까치, 큰부리까마귀, 직박구리, 딱새, 박새, 오삭딱다구리, 콩새, 멧비둘기(12종)
잠에서 깨기 직전의 큰기러기 무리들, 출판단지 유수지에 온 목적은 첫째 개리, 둘째 노랑부리저어새다. 그리고 필드스코프를 시험하기 최적의 장소라는 점도 포함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개리는 못봤고, 노랑부리저어새는 여지껏 만난 중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으며, 필드스코프는 정말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노랑부리저어새 16마리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필드스코프로 보니 노랑부리저어새가 눈 앞에 생생하게 다가왔다. 출판단지유수지 중심부에 새들이 있으면 쌍안경으로는 보기가 좀 답답한 면이 있었는데 필드스코프가 그 갈증을 단번에 명쾌하고 선명하게 해결해 줬다!!
개리는 못 보고 고라니는 봄
오랜만의 탐조이기도 했고 개리도 못 만났기 때문에 귀가하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평소 가보고 싶었던 장산전망대로 이동했다. 나는 뚜벅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닿는 곳만 가는 편인데 의외로 장산전망대는 대중교통으로 갈만한 곳이었다. 그간 왜 안갔었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세계를 만났다!
탁 트인 임진강 풍경을 보자마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왼쪽 땅이 그 유명한 초평도!
오후의 상승기류를 타고 독수리들이 선회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사진에 찍히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40-50마리는 되 보였다.
그리고 내 앞에서 멋지게 날아가 주던 한 마리! 짜릿했다.
장산전망대는 겨울 하늘을 시원하게 가르는 독수리 관찰 맛집이다!
그리고 저~ 멀리 논에서 낙곡으로 허기를 채우는 재두루미 무리!! 내가 그동안 보고 싶었던 재두루미가 이렇게나 많았다. 사진 보다 훨씬 뒤쪽에도 큰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대략 200여 마리가 있었던 것 같다. 사진에만 83마리이다.
재두루미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장산전망대를 내려왔다. 약 15분 정도 하산하니 재두루미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 무리의 재두루미 무리를 보면서 어느 정도까지 다가가야 괜찮을지 몰라서 멀찍이서 필드스코프로 내적 흥분속에 관찰했다! 두루미류에 관해서 새덕후의 영상을 여러번 본 터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재두루미들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가 평화롭게 존재했고 나는 필드스코프덕분에 이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재두루미 무리를 한 참 바라보다가 옆을 봤더니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재두루미 한 가족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조 둘에 미성조 둘이었다. 부부와 자녀인 것이다! 너무 반가웠다! 성조는 얼굴에 붉은 기운이 있다.
얼굴쪽에 붉은 기운이 없는 것이 미성조, 자녀새들이다.
부모새중 하나가 계속 경계를 서고 나머지는 식사에 여념 없었다. 숫컷인지 암컷인지 모르겠지만.. 교대 하겠지?
경계서다가 지겨운지 가려운지 깃정리 중~ 눈여겨 볼 점은 한 다리로 서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격스럽고 황홀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나와 재두루미의 평화와 공존을 깨뜨리는 존재들이 나타났다!
가까이 있던 재두루미 가족을 보는 데 갑자기 내 등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바로 이들이다. 60대로 보이는 이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성큼성큼 재두루미 무리를 향해서 가는 것 아닌겠는가? 나는 필드스코프로 보다가 멈출 생각 없이 계속 가는 두 사람을 향해서 소리쳐 멈춰세웠고 가지 말라고 화를 냈다. 이들은 자신들은 이런 일에 전문가라고 하면서 새 찍으러 가겠다고 고집하길레 정말 빡친 것처럼 소리 지르니 그제서야 멈췄다. 새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야야 할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이들은 퉁명스럽고 내 존재가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크게 소리 지른 뒤 멈춰선 곳에서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들은 한 2-3분 사진을 찍더니 자신들이 원하는 풍경 또는 거리가 허락되지 않자 나에게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냐고 물었다. 그러길레 나는 재두루미들 보러왔기 때문에 한동안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제서야 돌아섰다. 나는 이들의 행태로 보건데 아주 높은 확률로 새들이 날아오르도록 할 모양으로 보였다. 이들이 가까이 다가선 덕분에(?) 재두루미들은 논의 중앙에서 논의 경계까지 이동했다. 아무튼 이 빌런들을 퇴치한 후 필드스코프로 재두루미 감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다른 변수가 생겼다. 동네 주민이 개들을 데리고 논을 가로질러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를 말릴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두 번째 등장한 빌런 때문에 재두루미들은 날아갔다ㅜㅜ
큰 무리가 사라지자 나는 허탈한 마음에 다시 근처에 있던 재두루미 한 가족에게로 시선을 돌리려던 찰라 멀리서 오던 차가 한 대 멈춰 서더니 카메라 장미를 꺼내고 있었다. 내쪽에서는 시야가 가려져서 몰랐는데 이 차 근처에 또 다른 재두루미 무리가 있었고 차에서 내린 사람이 다가가자 그 재두루미 무리는 날아갔다ㅜㅜ
끝이 아니었다. 결국 논에 남아 있던 유일한 재두루미 무리, 내가 감상하던 재두루미 무리에 접근하는 또 다른 차량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창문을 내리고 노골적으로 재두루미를 바라보면서 운전하고 있었다. 제발 그냥 그길로 직진했으면 했다.
재두루미 가족도 그 차량이 신경쓰였나보다. 그러나 나는 카메라 시야 밖으로 차량이 사라지 길래 그냥 직진하는 줄 알았다.
내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좌회전이 되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차량은 결국 재두루미 무리를 향해서 다가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재두루미 가족도 날아올랐다.
정말 허탈함과 짜증 그리고 환멸이 공존했다. 약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만난 4팀의 군상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결국 재두루미들은 철조망 넘어에서나 평화를 찾을 것이다.
재두루미의 우아한 모습에 감탄하며 절정에 이르던 오늘의 탐조는 결국 허망함 속에 마무리 됐다ㅜㅜ
사람들이 재두루미의 평화를 깨트린 댓가로 얻은 한 장이다. 솔직히 직관적으로는 꽤나 멋진 풍경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런 걸 사진에 담아보려고 고민도 없이 새들의 평화를 깨뜨리려 하는 것인가? 그러나 나에겐 수치의 기록으로 남았다. 깨진 평화는 아름답지 않다. 그저 정신 없이 안심하고 낙곡을 먹는 재두루미의 풍경이 훨씬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