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이야기 <4> 이웃집 남자
알콩달콩 이야기 <4> 이웃집 남자
정진화 (사)평화마을짓자 이사장
파주로 이사 오기 전, 서울의 우리 동네 아파트는 지은 지 삼십년이 넘었었다. 부모님이 처음부터 여기 살다보니 이따금 안부를 묻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편찮으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나도 부모님이 이웃과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했던 것처럼, 인사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고 길가다가 이야기도 하고 지냈다. 강아지 두 마리를 아침저녁으로 산책시키다보니 개엄마들과도 친해졌다. 덕분에 세탁소 아저씨, 윗집 데이케어 센터 다니는 할머니네, 경비원 아저씨들, 청소 아주머니, 새벽 아파트 전체 청소하시는 아저씨, 개엄마들, 학교 가는 아이들, 걷기운동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택배기사님들, 단골 책방과 시계방 주인, 구멍가게와 동네 빵집 일하는 분들, 자주 가는 음식점과 은행 직원까지 인사하며 지내는 이웃들이 참 많아졌다.
그러다가 언제 이사 왔는지 아래층에 사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에 안경을 낀 머리 긴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아파트 정자까지 나와서 담배를 피거나 앉아 있다가 들어갔다. 인사를 해도 못 본 척 하는지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지나치다가 그래도 그게 아니지, 하면서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곤 했었다. 드디어 2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을 하던 길에 그 남자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더니 이 남자가 강아지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쓰다듬으려 하였다. 곁을 잘 안주기로 유명한 우리 강아지들은 살짝 피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제가 담배를 피워서 강아지들이 안 좋아하나 봐요"라고 말했다. 처음 듣는 맑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아니에요, 얘들은 친해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라고 난 대답했다. 그 뒤로 늘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의 짧은 대답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삶이 재미없고 쓸쓸하고 할 일도 없고 벗도 없어 뵈는 그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하여 우리는 정원에서 아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그는 조카와 단 둘이 살면서 전기를 아끼려고 텔레비전과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밖에서 식사를 사먹는다고 했다. 한때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환경단체와 인터넷에 댓글을 달곤 한단다. 먹을거리를 몇 번 가져다주었더니 어느 날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를 선물로 주면서 자기 필명이 ‘황야의 이리’라고 수줍게 말했다.
사정은 모르지만 한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기에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그 사람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만약에 힘든 일을 겪었다면 다시 살아갈 용기와 기운이 나기를... 어느새 개엄마들이 그에게 말을 걸고 이름을 알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유기견을 기르고 말 못하는 개와 소통하는 개엄마들은 이 사람도 돌봐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게 된 걸까.
그러다가 나는 도시의 삭막하고 외로운 각자도생의 삶을 넘어서려면 마을공동체가 답이라는 생각에 파주로 이사 와서 눌노리평화마을을 만들게 되었다. 덕분에 아버지가 휠체어에서 침대로 가시려다가 미끄러져 주저앉으셨을 때 한밤중에 달려와 침대에 눕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이웃집 남자, 차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밤마실을 갈 수 있는 이웃,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번개팅하여 저녁을 같이 먹는 이웃, 집을 며칠 비울 때 온실에 물을 주고 닭과 개를 돌봐주는 이웃들과 ‘서로 돌봄’의 마을공동체를 엮어가고 있다. 어찌 사람 이웃뿐이겠는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 우당탕탕 흐르는 개울물과 개구리 합창, 우짖는 풀벌레와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노래, 날마다 피어나는 꽃들과 풀들까지 이웃들이 무척 많아졌다. 밭을 일구고 마당을 거닐 때 우리는 서로 각자의 언어로 인사한다. “안녕 안녕, 고마워.” 어디나 참 좋은 이웃이다.
#18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