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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2)  1.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② 벗을 보내며

입력 : 2019-10-28 04:50:01
수정 : 2019-11-18 06:08:59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2) 

 

1. 이별노래. 이규보의 임진강  벗을 보내며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1213년 이른 봄, 이규보는 떠나는 모습이 아니라 보내는 사람으로 임진강을 찾는다.

 

무슨 일로 말을 멈추라 권했는지 아는가

배 타고 떠나감을 보지 않으려 함이지

후일 만날 때에 반가운 눈으로 맞이하겠지만

아마도 오늘 떠나면 검은 머리 백발되리

이른 봄날 임진강나루에서 본사로 돌아가는 문 선로사를 전송하며 강가에서 시를 구점하다

 

 

▲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이규보는 임진강에서 친구를 보내는 송별시를 읊었다. 시의 주인공인 문선사는 불교종단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던 대선사 혜문이다. 가지산문을 대표하는 승으로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을 계보 아래 둔 이다. 문선사는 월송화상이라고 달리 불리는 저명한 시인이기도 했다. 당시 선사는 개성에서 활동하다 본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규보와는 20년이 넘게 교우를 이어오는 사이였다. 이규보가 전주로 떠날 때와 달리 이들은 함께 배에 오르지 않고 강가에서 헤어진다. 긴 이별의식이 오히려 괴로웠던 것이다. 선사가 화답했던지 곧이어 다른 시가 이어진다.

 

석장을 짚고 성 밖으로 나가

출렁이는 강물에 외로운 배 기다렸네

떠나는 행색 차마 볼 수 없어

강물 등지고 서서히 고개 돌렸노라

문 선로사가 화답하기에 다시 그 운에 차하여 화답하다

 

다시 만나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겠지만 이제 헤어지면 백발이 돼야나 만날 것이다. 차마 볼 수 없어 강물을 등지고 만다. 연인의 이별이 떠오른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일 수는 있겠다. 눈물을 참고 벗을 보내는 감정은 그리 흔치 않다. 이별은 떠나는 자보다 보내는 심정이 더 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규보는 앞서 전주로 떠나며 읊은 시에서 이별의 눈물이 파도처럼 일어난다고 했다. 심정은 절절한 것이지만 그것은 언어적 수사에 그친다. 보낼 때의 시는 이와 다르다. 말은 사라지고 등지고 고개 돌리는 동작만 드러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떠나는 자나 보내는 사람이나 이별의 정한이 아프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이별 뒤의 장면은 많이 다르다. 떠나는 자 앞에는 새로운 풍경,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그것이 고달픈 현실이라 해도 끊임없이 맞받아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별의 감정에 얽매일 틈이 없다. 전주 부임 당시 이규보가 도성을 떠난 지 열흘이 지나 부임지에 도착해서야 타향을 깨달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반면 보내는 자의 상황은 달라질 것이 없다. 빈자리만 확인될 뿐 이별의 순간에서 시간은 멈춰 버린다. 서서히 그 시간이 스러질 때까지 이별의 고통은 지속된다. 많은 이별노래들이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는 이의 심정을 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규보와 선사가 백발이 되어서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시문을 통해 교우를 이어간 것은 분명하다. 무궁화를 두고 펼친 흥미로운 화답시가 있다. 둘은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거나, ‘궁궐에 이만한 꽃이 없어서 무궁화라고 했다는 시문을 주고받는다. 시는 꽃이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허무함을 보지 못해 도리어 무궁화라고 했다는 농담 섞인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 내내 격 없는 친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몽골과 전쟁이 시작된 어지러운 시기에 더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맞게 된다. 전쟁으로 절을 잃고 남에게 의탁하던 선사가 외로이 죽자 이규보는 멀리 피란조정이 있던 강화에서 애사를 지어 바친다.

슬프다. 우리 선사여. 이제는 그만이구려.”

 

  이재석 /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저자

#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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