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19세 청춘, 어설픈 파리지엔느 되다 (4)

입력 : 2016-07-21 14:53:00
수정 : 0000-00-00 00:00:00

 

관찰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느릿느릿 살아가는 일상…

 

다른 사람에게 쉽게 윤리적 잣대를 대지 않는 프랑스

벌써 내가 이곳에 온 지 7개월이 지났다. 생각해 보면 참 긴 시간이지만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사실 이곳에 와서 변한 건 딱히 없다. 난 한국에서처럼 느릿느릿 생활한다.

 

학원을 조금 다니다 말았기 때문에 불어는 조금밖에 늘지 않았고 대신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남은 시간동안은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좀더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달부터 학원을 다닐 계획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파리의 다리
 

요즘은 카메라도 하나 사서 사진 찍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아직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기 때문에 친한 친구는 없지만 이제 열심히 할 거니까 괜찮다. 지금까지는 그냥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느낌이 좋다. 관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여기서는 아무도 서로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반려견의 똥을 치우지 않는다거나 밤늦게 지하철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는 등 상식을 벗어난 사람도 간혹 보인다.

 

▲독일에서 찾아온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찾아와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느껴

지금은 독일에서 유학 생활 중인 친구와 함께 있다. 내 몇 안 되는 친한 친구 중 한명이다. 겨울에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베를린에 갔었는데, 지금은 친구가 여기에 왔다.

 

간만에 여행자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외식도 자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니 이 도시가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

 

외가가 제주여서 제주는 어린 시절부터 고향처럼 친근하고 가까웠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과 상관없이 여행을 목적으로 갔을 땐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이 느껴졌다. 딱 그런 느낌이다.

 

접근성 좋은 미술관들과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보면 아름답기로 유명한 여기 파리에 태어나 평생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관광객으로 바글거려 복잡한 거리를 보면 이곳 주민들은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생마땅 운하에 있는 들리는 다리
 

내가 멀리 동떨어진 느낌

한국에서는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족 채팅방에서 주고받는 대화들과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서 기분이 이상해진다. 내가 멀리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크게 체감되면서 모든 것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내 옆에 있는 친구와도 가깝지 않은 것만 같다. 모든 사물들, 사람들의 표정도 불편하게 느껴진다. 내 말과 행동들도 온전히 내 것 같진 않다.

 

오랜만에 두부를 넣어 찌개를 만들었다
 

나는 올해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굉장히 고민 많고 우울하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학교라던가 직업, 집단에 대한 소속감 같은 것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우울하고 예민하다는 것이 싫진 않다. 나는 집단 안에 있는 내 모습을 좋아하지 않고, 예민함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니까. 예민하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우울함과 외로움은 누구나 평생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만든 연어 샐러드.
 

하지만 쓸데없는 고민은 좀 버리고 싶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아무 걱정도 없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걱정 말고 생각을 하고 싶다. 내가 편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글 조은혜

 

 

 

#45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