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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52] 청 왕조에서 활약한 조선인

입력 : 2016-11-16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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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왕조에서 활약한 조선인 

 

1644년에 만주족 팔기군이 관내로 진입할 때 팔기군에 편성되어 있던 많은 조선족 부대도 함께 들어갔다. 수도인 북경에 주둔했던 팔기병 가운데서 제1고려좌령(佐領:팔기군 편성단위), 제1기고(旗鼓)좌령, 제2고려좌령, 제12좌령, 제14좌령 등은 모두 조선족 들로 이루어진 좌령들이었다. 관내로 들어간 조선족 관병 가운데서는 무용이 뛰어난 명장들이 많았고 문화계와 정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조선인이 있었다.


팔기군 이끈 이사충과 아들들

유명한 무관 이사충(李思忠)은 조선 족이었다. 그는 1644년에 팔기군을 거느리고 섬서로 진격하여 동관을 점령하였고 강남으로 진 군하여 양주를 함락하였다. 장강 남북의 10개 주와 현의 저항세력을 진압한 그는 지방의 최고 군사장관 인 섬서제독(提督)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둘째 아들 이음조 (李蔭祖)도 많은 공을 세워 청 왕조의 병부상서(兵部尙書:국방장관)에 올랐다.

이음조의 아들 이 병( 李 炳)은 강희(康熙)년간에 병 부 시랑(侍郞:차관)으로 있다가 그 후 지방의 최고 행정장관인 안휘성순무(巡撫)가 되었다. 이사충의 셋째 아들 이현조(李顯祖)는 강희년간에 광동수사제독(水師提督)으로 있었다.

 

호군통령에 오른 한걸

한걸은(韓杰殷)은 청 초기에 1등 경차도위 (輕車都尉;세습작위 명칭) 였던 한 니(韓 尼)의 아들인데 정홍기만주부도통 (正紅旗滿洲副都統)으로 있다가 강희년간에 수도의 최고 위수사령관인 호군통령 (護軍統領)에 올랐다.

 

대추나무 활자 만든 김간

청 초기에 ‘고려인’으로 불렸던 김 간(金 簡)은 저명한 학자였다. 그는 ‘사고전서(四庫全書)’편찬팀의 부책임자가 되어 조선의 동활자를 모방한 대추나무 활자를 만들었다. 그는 견륭(乾隆)황제로부터 ‘김가(金佳)’란 성을 하사받았고 1792년에는 이부(吏部)상서에 올랐다. 그의 누이동생은 건륭황제의 귀비가 되었다.

 

서화수집 감정가, 안거

안기(安岐)는 강희년간에 활동한 서화 수집 감정가인데 그가 편찬한 ‘묵연회관(墨緣匯觀)’이란 책은 지묵(紙墨)과 인장(印章)의 진위를 감정하는 교과서였다. 그는 건륭황제에게 많은 서화작품을 헌상하였고 죽은 후 그의 수집품은 대부분 청 황실이 소장하였다.

 

공부시랑에 오른 한세속

청 말기인 광서(光緖)년간에 정치무대에서 중요한 활동을 한 세속(世續)은 김씨 성의 조선 의주 출신 인물이었다. 그는 매우 박학다식하였고 1896년에 공부(工部)시랑에 올랐다. 그 후 종1품인 협판대학사(協辦大學士), 군기대신(軍機大臣)이 되었다. 신해혁명(辛亥革命) 후에는 민국측과 황 실에 대한 예우를 협상하는 일의 황실측 대표를 맡았다. ‘덕종(德宗:광서제)실록’ 편찬 책임자였다.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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